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oshiki (문단 편집) === 고등학교 시절 === ||[[파일:yoshiki-teen.jpg|width=375]]|| ||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물고있는 고교시절의 요시키 || [[1981년]] [[3월]], 맹렬한 수험 공부가 결실을 맺어 15세의 요시키는 아와 고등학교에 합격을 했다. 1학년 가을, 요시키는 NOISE를 이끌고 문화제의 무대에 섰다. NOISE는 유행하는 하드 록을 카피해서 연주했다. 문화제 1주일 전부터 멤버를 소집하고 집중적으로 합주를 반복한 요시키는 레퍼토리를 완벽히 만들어 공연을 기다렸다. 문화제 당일 1000명이 넘는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육관 무대 한가운데 나타난 그들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Rainbow, UFO등 하드 록 밴드의 노래를 멋지게 연주하며 열광을 자아냈다. 아와고등학교 문화 축제에서 NOISE의 연주는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학교측은 록 연주와 그들의 퍼포먼스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했다. 학교에서는 록은 불량아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었고, 요시키 이외의 나머지 성실한 멤버까지 "저놈들도 모두 요시키와 같은 문제아들이다"라고 취급해버렸다. 문화제의 무대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불량아로 오해받은 멤버들에겐 미안함 마음의 요시키이었으나 자신에 대해 주위에서 어떤 식으로 떠들든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드럼을 격렬히 더 빨리 치는 즐거움을 느끼며 "왜 이런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거지?" 라는 생각 뿐이였다. [[1982년]] [[4월]], 2학년이 된 요시키는 진로별 선택에서 [[이과]] 코스를 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잘했던 그는 별로 생각할 필요 없이 이과를 선택했지만 진학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요시키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밴드를 이끄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시키와 토시 외에 멤버들이 대학 진학에 준비를 시작한다는 이유로 밴드를 빠지게 되었다. 요시키는 결국 NOISE을 해체하고 토시와 함께 새로운 밴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요시키는 [[아이언 메이든(밴드)|IRON MAIDEN]]에 빠져 있어서 새 밴드의 리드 기타를 둘로 하는 것을 생각했다. 요시키는 멤버 모집을 위해 기타 실력이 뛰어난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밴드에 참여하지 않을래?"라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다. 마침내 [[1982년]] 여름, 요시키가 모은 멤버들로 새 밴드가 결성되었다. 이름은 바로 [[X JAPAN|X]]였다. 당시 긴 이름의 밴드가 많았기에 오히려 한 글자면 문화제나 콘테스트의 책자에 실릴 때 눈에 띌수있다는 이유에 X라고 지었다. 또한 요시키는 "X"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알파벳의 24번째 글자 외에도 수에는 미지수의 부호, 미지의 사물, 무한의 가능성 등 여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요시키는 밴드의 활동이 바쁘게 되면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펑크 내기도 했다. 화난 여자친구가 "음악과 나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해?"라고 물을 때면, 요시키는 "음악이지"라며 딱잘라 얘기했다. 요시키는 밴드 멤버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잃게될 바에는 차라리 여자친구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요시키는 드럼 연습하는 시간을 확실하게 쌓아 갔다. 요시키는 첫 자작곡 I’ll Kill You를 작사/작곡한다. 고등학교 2학년, 자신의 학교 문화제에서 처음으로 이 노래의 공연을 펼친다. 따지고 보면 이 공연이 [[X JAPAN|X]]의 첫 공연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6jPuhLc-Xyo|[[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0]]]] 요시키는 [[1983년]] [[4월]], 3학년으로 진급하자, 음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이과]]에서 [[문과]]로 옮기고 피아노의 레슨을 본격적으로 재개한다. 음대 피아노과를 가려면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야 했던 요시키는 도쿄시내에 사는 프로 피아니스트 강사에게 일주일에 2회 왕복 3시간을 걸려 레슨을 받으러 다니며 음대입시를 위한 준비를 밀어붙였다. 입시 준비를 위한 수업내용은 피아노 연주에만 머물지 않았다. 청음, 시창(視唱), 악전을 배우는 훈련을 거듭해야 했다. 또 자주 시험과제를 하기 위해 19세기 독일 작곡가 프란츠 부에루나가 간행한 <합창 연습 곡 모음 집>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처음 보는 악보를 바로 치는 초견 연주의 훈련과 청음 훈련에서 경이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강사이자 피아니스트도 혀를 내두르며 인정했다. 여름이 되면서 일본 대학 예술 학부에서 개최되는 음대 수험자를 위한 강좌에도 다녔다. 청음으로 완벽한 점수를 받은 요시키는 일찍이 지망 학교를 정했다. 제1지망은 무사시노 음악대학, 제2지망은 도호 음악대학, 3지망은 일대 예술학부이다. 국립대학의 도쿄예술대학은 사립음악대학과 다른 수험과목이 많아서 처음부터 제외했다. 2년간의 공백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 요시키는 필사적이었다. 요시키는 밴드 멤버들에게 콘테스트에 나가보자고 제안을 한다. 요시키의 생각에 반대하는 멤버는 한명도 없었다. 요시키는 [[야마하]]가 주최하는 EastWest의 [[치바현]] 대회 참가를 신청한다. 시험공부를 잠깐 멈춘 요시키는 X의 멤버와 함께 대회에 나선다. [[타테야마]]에서 나와 [[치바시]]에서 연주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첫 경험이었다. 사복 차림으로는 절대 연주할 수 없었던 문화제와는 달리 멤버들은 T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 요시키는 얼굴에 화장을 하고 머리카락을 곤두세웠다. 몸에 쇠사슬을 두른 토시는 주위를 거칠게 돌아다니고 소리치며 노래를 불렀다. 대회 직전에 정학 당했던 또 한명의 멤버는 교사에게 머리가 깎여서 빡빡머리였다. 연주곡으로 선택한 "I'll Kill You"의 폭주하는 멜로디와 토시의 높은 키의 목소리는 참가한 많은 밴드들 속에서도 당연 독보적이었다. 솔로 파트에서는 기타멤버가 피를 보이는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심사원이나 관객을 더욱 놀라게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ryTvz_UXTu8&t=81s|[[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0]]]][* 참고로 이때 다른 밴드로 콘테스트에 참가 중이였던 [[PATA|파타]]도 이 공연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X는 이 대회에서 밴드로서의 수상은 놓쳤지만 요시키가 베스트 드러머 상을 거머쥐었다. 작은 상장을 건네받은 요시키는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역시 기쁨을 감출수는 없었다. 자신만의 개성적인 드럼실력이 관객들에게 전해진 것의 기쁨이 17세의 요시키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얼마 후 음악대학의 추천 입학도 정해지고, 요시키는 피아노 레슨에만 집중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요시키의 집에 토시가 놀러온 것은 겨울 방학 직전이었다. 요시키는 이층계단 아래의 냉장고에서 캔쥬스를 꺼내고 토시에게 초콜릿을 주었다,토시는 끊임없이 입속으로 초콜릿을 넣고있었다. 요시키는 초콜릿을 먹지 못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토시가 물었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되는거지?". 토시는 X의 활동에 대해서 요시키에 물었다. 토시도 EastWest 경연대회 후 다른 대회에서 베스트 보컬 상을 수상하였고, X의 보컬로서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대회에서 얻은 작은 영광은 미래를 비추는 빛이었다. 제법 관객들에게 인정받아 작고 큰 상을 여러 개나 수상한 요시키도 마음이 사실은 용솟음 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대단할지 몰라." 그런 요시키에 이번에는 토시가 맞장구를 쳤다. 요시키의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요시키는 음대를 목표로 입시 공부에 몰두한 1년을 되돌아보았다. 대입을 위해 달려온 그 순간, 요시키는 자신이 오랜 꿈을 꾸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 입시 시험이라는 목적을 향하여 집중해 있었던 요시키는 이제야 겨우 오랜 꿈에서 깨어나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시키는 빠른 어조로 토시에게 말했다. >요시키: "하면 하는거야. 어중간한 건 싫으니깐. 도쿄에 나가 X로 승부 한다면 나 음대 가는 거 그만둘게. 너와 일본을 정복, 아니 세계 정복을 하자.“ > >토시: "그래. 요시키 너라면 틀림없이 할 수 있어." > 두 말 없이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중학생 때 장래의 꿈으로 내세운 록스타는 요시키의 진실된 꿈이었다. 그것이 명백히 드러난 지금 음대입학을 기다릴수는 없다.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선생님들에게 실망감을 안기는일은 어쩔수 없었다. 겨울 방학이 끝난 3학기, 요시키는 담임 교사에게 거짓없이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그러나 결정된 대학진학을 무산시키고 록 밴드를 하겠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았다. 요시키는 교무실로 불리고 몇 시간이나 교사의 설득을 들어야했다. 하지만 달라질 수 없는 결정이었다. 진학 포기를 들은 어머니도 계속해서 대학에 가는 게 좋겠다며 아들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요시키는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도 그런 요시키에게 손을 들었다. 그런 아들의 성격을 가장 잘 알고 계시던 어머니는 결국 대학포기를 용서해주었다. 하지만 요시키는 아마추어 록 밴드가 어떤 장소에서 활동하면 되는가, 또 실력 있는 멤버는 어떻게 찾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또 어떻게 하면 프로로 데뷔할 수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요시키와 토시는 지식이 부족했다. 음악 잡지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밴드 활동의 장소는 대체로 라이브 하우스였다. 유명한 가게에서 라이브를 성공시키면 정기적으로 연주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요시키는 졸업이 가까울 무렵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도쿄에 가서 라이브 하우스의 최신 정보를 수집하러 다녔다. 요시키를 걱정한 선생님이 그를 찾아 직접 라이브 하우스를 가기도 했다. 그러나 요시키에 대한 교사들은 점점 응원의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졸업식은 무난히 치러졌다. 졸업 앨범에 요시키가 쓴 메시지는 단 하나의 단어였다. >'''"X"''' > 요시키와 우정을 같이한 토시는 이렇게 적었다. >'''"We are X"''' > ||[[파일:yoshiki_toshi.jpg]]|| || 고등학교 졸업사진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