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釗 (문단 편집) == 음가 == 이 글자를 쓰는 이름의 경우 국내 대부분의 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설명에서 '''쇠'''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자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이름의 경우 그 음가를 "쇠"로 달고 있다. 이는 '乭(돌)'과 마찬가지로 [[구결]]에서 비롯된 훈으로 보인다. 구결에서 刂는 '利'에서 비롯되어 '이'로 읽었으므로, 金에 刂를 달아 金刂로 적고 '쇠'라고 읽는 독법이 있었다. 그것이 하나의 글자로 합쳐져 釗가 된 것이다. 그런데 乭의 경우는 乙은 乚/乙의 형태로 방으로나 쓰이지 乙형태 그대로 발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반면 刂는 같은 위치에서 부수로 활발히 쓰였기 때문에 [[수렴 진화|중국에서 쓰이는 釗와 우연히 모양이 겹쳤다.]] 따라서 한국인의 인명에서만 '''쇠'''로 표기함이 마땅하다.[* 참고로 한국에서 국자가 아닌 국의자의 예는 釗 외에 시집 시로 쓰이는 [[媤]], 탈날 탈로 쓰이는 頉(중국에서는 頤의 이체자)가 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한자음사전'에서는 국의자로 설명하며, 국음은 "쇠"라고만 설명하였다. 아예 중국에서 쓰이지 않는 [[국자(한자)|국자]]와는 달리 중국에 존재하는 자가 한국에서 특별한 뜻으로만 쓰이는 경우 국의자(國義字)[* 太가 콩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한국 한정의 음이 존재하는 경우를 국음자라고 하는데[* 印을 끝이라고 읽는 경우.] 이 글자는 전자와 후자에 모두 속한다. 즉 [[거짓짝|형태는 같지만 사실상 동형이자 관계]]에 속한다.[* 다만 釗의 경우 같은 형태의 글자가 중국에 있다는 인식은 국내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원종]]이 주나라 강왕의 이름을 본받으려 자신의 휘를 釗로 고쳤다가, 동형이자 이름의 [[고국원왕]]이 비명횡사를 한 사실을 알고서 이름을 되돌렸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 비슷한 예로 垈가 있다. 이 글자는 한국 국자로는 "터 대"라는 글자지만, 일본에서는 ぬだ라고 읽는 지명용 국자이다. 다만 이 글자가 다른 글자에 비해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비슷한 상황인 다른 글자 頉(본음 이, 국음 탈), 媤(본음 사, 국음 시)의 경우 중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벽자라서 충돌될 여지가 없는 반면에 이 글자는 [[주강왕|주 강왕]]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이후 중국에서 인명자로 널리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아래 인물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이 글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이래 꾸준히 인명에 사용되었고 현재도 이 글자를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중국]]에서 이 글자를 나타내는 반절은 止遙切, 之遙切(광운), 莊交切(집운), 古堯切(광운)[[http://www.zdic.net/z/27/kx/948A.htm|강희자전 釗항목]], [[http://kanji-database.sourceforge.net/dict/sbgy/v2.html#xp03|광운 蕭韻]]로 나타나며, 이 글자의 상고음은 [kljew]로 추정되고 있다. 광운 및 집운에서 설명하는 반절의 경우 앞의 두가지는 모두 章母+宵韻 3등(중고음 [tɕiɛu])임을 나타내는 반절로 이에 합당한 음가는 과거의 표기법으로는 "죠"며 현대 한국어 표기로는 "조"가 합당하다.[* 같은 반절에 속한 한자들은 모두 "조" 내지 "초"로 발음된다.] 古堯切절의 경우 見母+蕭韻 4등(중고음 [kieu])를 나타낸 것으로 "교"로 읽는 것이 합당하다.[* 참고로 이 반절도 사정이 복잡한 편이다. 다만 한국의 자전에서는 이 음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원음인 "교"로 적고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대표자인 驍가 근고한어에 이르면서 曉에 이끌려 속음 xiao가 되면서 같이 xiao로 읽히는 글자도 있었고(梟 등) 澆처럼 원음대로 jiao가 된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는 澆(堯에 이끌려), 邀(원래부터 교와 요가 둘다 있음)에 이끌려 "요"가 된 글자도 있는 매우 문제가 많은 반절이다.] 네이버 한자사전[[http://hanja.naver.com/hanja?q=%E9%87%97&cp_code=0&sound_id=0|네이버 한자사전 釗항목]]에서는 이 음가에 대해서 '''소'''로 음가를 나타내고 있으나 후술할 집운의 莊交切을 따른 것이거나[* 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운학이 발달하기 전에 한국에서 쓰이던 운서가 집운의 요약판에 해당하는 배자[[예부운략]](광운의 요약판인 예부운략에 집운의 기준을 적용한 수정본이다.)이었기 때문.] 音昭를 따라 "소"로 표기한 것이나 昭는 조(止遙切)와 소(時饒切)라는 두가지 음이 모두 있지만 중국에서는 "조" 쪽이 주류음이고 "소" 쪽은 비주류 음이었다. 근고한어에서 중국 쪽에서는 거의 "조"로만 읽었다. 당장 상고음-중고음의 변천 과정과 강희자전의 반절을 함께 보면 여기서 쓰인 "조"나 "교"로 읽는 것이 합당하다.[* 상고음이 kljew였는데 중고음에서 tɕiɛu, kieu의 형태로 음이 분화된 것은 당시 한자음에서 광범위하게 보이던 현상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고음#s-2.1.2]]항목의 구개음화 항목 참고 바람. ] [[집운]]에서 나오는 莊交切의 경우 이전에 편찬된 [[절운]]부터 광운에 이르기까지의 운서가 모두 절운의 확장판에 가까웠던 반면에[*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절운부터 광운까지의 운서를 절운계 운서라고 부른다.] 집운은 之母가 권설음화되고 있는 현실에 맞추어 莊母[ʈ͡ʂ][* 조기 중고음 시기에는 tʃ로 발음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기 중고음으로 갈수록 권설음화되었다. 현재도 권설음으로 발음된다.]로 옮긴 것인데 이를 따르면 "죠"가 된다. 이 집운의 莊交切을 따르면 "소"로 표시될 근거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집운의 莊交切에 속한 한자의 경우 소(巢)처럼 소로 읽는 경우와 抓처럼 조로 읽는 경우가 갈리기 때문.] 그러나 집운의 내용에 따르면 쇠뇌틀, 힘쓰다는 "교"(堅堯切)[* 爾雅勉也一曰弩機], 쇠뇌틀, 달아나다, 힘쓰다 일때는 "교"(祁堯切)[* 群母+簫韻 4등으로 중고음 /gieu/에 해당한다. 병음으로는 /qiáo/][* 弩機也一曰逸也勉也], 깎다, 주 강왕의 이름, 힘쓰다, 쇠뇌틀은 죠(조)(之遙切)[* 說文刓也周康王名一曰勉也一曰弩機]으로 읽도록 규정하며 오직 주강왕의 이름에서만 "죠"(속음 "쇼")(莊交切)[* 闕人名周康王]로도 읽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즉 주강왕의 이름을 제외한 경우는 사실 "소"로 읽을 여지가 전혀 없으며 이 음가 또한 전술한 상고음이나 중고음을 감안하면 "조" 혹은 "교"로 읽는 것이 훨씬 합당하다.[* 후한대의 설문해자止遥切의 반절은 止遙切, 당운, 정운의 음가는 之遙切, 광운에서의 반절은 止遥切. ] 그리고 어느 쪽이든 "쇠"로 읽을 수는 없다. 그리고 명나라 대에 발간된 홍무정운에서는 반절에 之遙切을 제시했으며 강희자전에도 止遙切,之遙切의 음가를 제시하였고, 분운촬요에서도 소운에서 昭로 묶여 있어(전술했다시피 [[조선]]에서는 밝다는 "소"로 비추다는 "조"로 읽었지만, 근고한어에서 昭는 "조"로만 읽었다.) 근고한어에서는 거의 한국한자음 "조"로만 읽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별도의 반절이 없을 경우 명청대 인물에 대해서 이 글자는 "조"로 읽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이 글자가 중국인의 이름으로 사용될 경우 쇠로 읽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글자가 중국인의 이름으로 쓰일 때는 발음이 /zhāo/(止遥切)라면 '''조'''로 /jiāo/(古堯切)./qiáo/(祁堯切)라면 '''교'''로, /cháo/(莊交切)만 "소(본음 조)"라고 읽을 수 있다. '''쇠'''는 한국인의 이름으로 사용될 때에 한해서 읽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