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경동 (문단 편집) == 역사와 자연마을 == 1963년에 [[청주시]]로 편입되기 이전까지는 청원군 사주면에 속했으며 편입 당시에는 가경복대동으로 묶였다. 이후, 복대동의 성장으로 복대1동이 먼저 분동되어 가경·복대2동에 속했다가 1994년에 복대2동에서 분리되었다. 과거에는 [[강서동(청주)|강서동]]보다도 더 발전하지 못한 시골 동네였지만 36번 국도([[가로수로]]) 인근 지역이라 [[경부고속도로]] 접근성이 매우 좋아, 시외터미널과 고속터미널이 1999년에 각기 사직1동과 서문동에서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해 지금은 서부권의 중심이 되었다. [[무심천]] 동쪽의 코어가 [[성안로(청주)|성안길]]이라면 무심천 서쪽의 코어는 가경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하복대 대농지구와 연담되어 도심을 넘어설 중심상업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가경동이 워낙 평지인데다가 넓어서 자연마을 역시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마을은 개경골, 풍년골, 발산리, 하발산, 홍골, 송골, 감나무실인데 이들 지명은 도시개발로 모습을 잃었지만 각종 시설 이름 등에 자취를 남겼다. '''개경골'''은 오늘날 터미널 인근에 있던 마을로 가경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경동의 중심이기도 하다. '''풍년골'''은 36번 국도, 즉 [[가로수로]] 밑에 있던 마을로 오늘날 서원중이나 가경동 동사무소가 있는 동네이다. 현재 풍년골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발산리'''는 현재의 사대부고 인근에 있던 마을로 발산공원이나 서점 이름으로 남아있다. '''하발산'''은 오늘날의 서부소방서 일대이다. '''홍골'''은 오늘날 [[MBC충북|청주MBC]] 인근의 마을로 현재는 닭백숙집과 몇몇 [[타운하우스]]가 있다. 또한 서현초 앞에 홍골지구라고 불리는 소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송골'''은 석남천 가에 있는 마을로 충북공고 뒷마을이다. 이곳은 아직 논밭이 가득하며 저 너머로 가경지구 아파트만이 조금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감나무실'''은 오늘날 가경주공단지 일대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지도를 보면 시동(柿洞)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는데 한자가 감나무 시柿[* 흔히 [[홍시]] 할 때 쓰이는 그 '시'이다.], 동네 동洞[* '실'은 마을을 뜻한다. '마실나가다'의 마실이 바로 그 예. 마을 자체가 '마-ㅿㆍㄹ'이라는 중세국어가 변화하면서 현재 형태가 된 것이다. 그 변화과정 중에서 파생된 것이 현재의 마실. 야채 무의 사투리 중 '무수, 여우의 사투리인 '여시'~~이런 [[여성시대|여시]]가 아니다.~~도 이와 같은 사례이다.]역시인 것을 볼 때 감나무골을 저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역시 본 지명도 감나무실 공원 등으로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