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경제 (문단 편집) === 종교정책 === 기독교(가톨릭)에 대한 탄압은 건륭제때 시작되었으나 가경제때도 계속되었다. 당시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인데, 교단이 지나치게 서양에 있는 교황청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어서[* 일부에서는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 때문에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비슷하게 유일신을 섬기는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큰 탄압을 하지 않았다.], 청조정은 위협을 느겼으며, 특히 교황청이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중국의 전통인 제사를 우상숭배 취급하며 금지할 것을 요구하며 더더욱 반감이 강해졌다. 청 조정은 대청률례[* 청나라의 중앙 법전]의 '금지사무사술'(禁止師巫邪術)[*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당과 술사를 금한다.] 조항을 기독교에 적용시켰으며, 이후 도광제 시기와 동치제 시기에는 더더욱 탄압이 가중되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한족과 만주족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처형되기도 했으며, 개종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서부의 [[이슬람]] 도시들로 보내져 노예로 팔려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펴는 것을 막기 위해 서양인들의 내륙 여행을 엄금하고, 이를 어긴 자는 사형에 처했다. 가경제때는 [[백련교도의 난]]을 겪으며, 종교반란이 청나라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반란세력이 될 수 있는 외래종교인 천주교도 탄압을 계속했다. 서방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이런 탄압에 반발했다. 기독교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서방세력의 침투 도구로 이용되는 면이 강했던지라 대부분의 동양국가에서는 탄압을 했다. 청나라도 탄압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선교사들이 탄압대상이고, 신도에 대한 대량처형은 드물었는데, 조선이나 도쿠가와 막부는 아예 신도들도 무차별하게 처형했다. 묘하게 당시 조선에서도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벌이고 있었으며,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때 청나라 신부 주문모가 조선에서 전교를 하다가 참수되었는데 가경제도 가톨릭을 탄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통보에 답변을 보내 '멋대로 월경해서 전교하다 죽었으니 자업자득이다'라고 하고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