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남풍 (문단 편집) === 부정적 평가 === [[중국 3대 악녀]]인 [[여후]], [[측천무후]], [[서태후]]에 버금가는 악녀로, 최근에는 측천무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측전무후를 대신해서 [[중국 3대 악녀]]에 가남풍이 들어간다.[* 측천무후(성신황제)은 철권 통치를 한 실책이 있지만 "그래도 백성들은 살기 좋았다더라."는 호평을 받았고 인재양성과 민생안정이란 여러 업적을 남겼다. 특히나 그녀의 통치기간에 이뤄낸 업적으로 당나라는 개원의 치라는 2차 전성기에, 안사의 난 이후로도 100년을 버텼다는 것을 감안해 남성 역사가에 의한 피해자라는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가남풍은 진나라 사마씨 황족들을 숙청하면서 사망 후에 [[팔왕의 난]]을 부른 책임이 있고, 결정적으로 팔왕의 난과 이후의 영가의 난으로 사실상 진나라가 멸망하고 5호 16국, 남북조시대라는 역대급 혼란을 가져왔기에 나라와 황실을 함께 결딴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심지어 미소년 납치나 간통, 살해 같은 엽기적인 범죄행위이자 개인이 권력을 남용한 전형적인 범죄행위가 야사가 아니라 공식 역사서인《진서》에 버젓이 남았다. 더구나 정치 투쟁 과정도 적절하게 당근와 채찍을 운용하고 자신의 편을 만든 측천무후와 달리 가남풍은 철저하게 숙청 위주에 그것도 제각기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비범하고 총명한 사마씨 황족들을 마구 죽였기에 자신의 앞날이 밝을 리가 없다. 특히 황태자 [[사마휼]]을 살해한 것은 서진의 사직에게도, 가남풍 자신에게도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자살 행위였다. 가남풍 자신에게 장성한 소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촉망받던 황태자였던 사마휼을 무고하게 살해함으로서 명백한 반역을 저지른데다[* 황제의 허락도 없이 죽였기에 명백한 반역이다. 이러면 황족들이 반역자인 황후를 처단한다고 하기에 좋은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혜제의 정식 후계자가 사라져 버렸으니 황족이라면 누구나 황제가 될 야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사마휼이 경계를 피하느라 좀 노는 것에 몰두하긴 했어도 폐위되고 살해당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사마휼은 가남풍에게 공조 해야할 관계였지 제거해야할 존재[* 폭탄의 뇌관이라고 생각해서 제거한게 사실상 안전핀이였던 셈이다. 111년 전에 [[십상시]]가 [[하진(삼국지)|하진]]을 오판으로 죽였다가 [[십상시의 난|역풍으로 몰락한 것]]과 데자뷰 수준으로 비슷하다.]가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사마휼 살해 이후 역풍이 불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가남풍은 [[권불십년]]이라고 이미 판단력이 완전히 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장 황태제가 될 욕심에 흑화하여 전면전 수준의 내전을 벌이면서 나라를 결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마영]]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황태자 사마휼에게 거만하게 대하던 가밀을 대놓고 갈구다가 찍혀서 외지로 좌천되었던 사람이었음을 생각해 보자. 오죽하면 질투와 성깔머리, 그리고 인성질로는 가남풍에 절대 뒤질리가 없는 그녀의 어머니 곽괴까지도 가밀이 싸가지 없게 굴 때마다 혼내가며 병들어 죽기 직전까지 태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그토록 부탁하고 죽었을 정도였는데도 그랬다. 자기 친자식까지 죽게 만든[* 아들이 유모를 더 따르는 걸 질투하여 유모를 패죽였는데 이 일로 아들은 울다 죽어버린다.] 곽괴의 판단조차도 저랬을 정도로 가남풍의 사마휼 살해는 집안 말아먹기 딱 좋은 짓거리였다. 이렇듯 가남풍의 사마휼 살해라는 만행은 사마씨 친척왕들을 완전히 자극하여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으로 이어지는 대혼란기를 열어제쳤다. 이후 백성들의 삶이 어떻게 됐는지를 감안하면 절대로 좋게 볼 수가 없다. "천하는 편안하였다"는 것도 바로 전이 [[삼국시대]], 바로 다음이 [[팔왕의 난]], [[영가의 난]]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일 수 있다. 궁중정변은 있다고 해도 아예 천하가 갈아엎어지는 전쟁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서진 정권 자체가 안정과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편안한 천하에 대한 공을 역사서에서는 명확하게 가모, 장화, 배외로 인해서라고 서술했다. 저 세 사람은 가남풍 시절 조정의 핵심 인사들로 가남풍과는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가모는 가남풍의 사촌이자 가씨 집안에서 제일 가까운 남자 친족이었고 배외는 곽괴의 조카로 가남풍과 배외는 이종사촌지간이었다.] 가남풍의 난행과 비행을 참다 못해 폐위 논의까지 하게 되는데, 저들 중 가모는 가남풍의 사촌형제이자 가씨 가문의 당주급인 인물이었다. 세 사람은 가남풍의 성질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달래도록 권유했다가, 그것만으로도 화를 입는다. 특히 가모는 가남풍에게 찍혔다가 홧병으로 죽어버린다.[* 여기서 가남풍 폐위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서 일이 틀어지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놈이 [[왕연]]이었다.] 가모가 가충에게 돌직구를 날릴 정도로 기본적인 사리판단이 된 인물인데다 가씨 가문에서 입지도 강했던 인물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황후의 권력이라는 게 외척들의 뒷받침 없이 유지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가모 정도 되는 인물은 어떻게든 지켜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거기다 가모와 가남풍이 틀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사마휼]] 때문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가모의 죽음이 더더욱 가남풍의 사망 플래그가 된다. 가모는 가남풍이 개인감정이고 뭐고를 떠나서 사마휼을 어떻게든 지켜야 된다는 입장이었고 가남풍은 그 사마휼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다. 문제는 대안도 없는데도 그 꼴이었다는 것이다.] 가남풍 때 핫한 가씨 집안 남자로 가충의 양자가 된 가밀이 있긴 했지만 저 인간은 애시당초 한씨 집안 인물로 아들 없는 외가에 양자로 들어와 제사나 잇는 인물이다. 그리고 선비들 불러모아 청담이나 즐기는 딱 그 수준의 인간이어서 능력으로나 덕망으로나 가문 내 위상으로나 그다지 가남풍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 못 되었다. 거기다가 정치감각도 떨어지는 주제에 욕심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자신이 설쳐대는 걸 싫어해 원수지간이 된 사마휼을 그렇게 이를 갈고 죽이고 싶어하다가 조왕 [[사마륜]]의 부추김에 넘어가 사마휼을 죽이는 데 앞장서게 된다. 당장 가모가 했던 상황판단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가남풍의 여동생 가오의 아들이었으니 가충의 양자라는 가문의 위치를 떠나서 나이도 어리고 뭔가 정통성도 애매한 인물이었는데 하는 짓도 딱 저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저 사마륜이 가씨 가문에 한 일은 [[팔왕의 난|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렇게 가모가 죽은 후 얼마 안 되어 가남풍은 사마륜에게 역관광을 당하고 모든 걸 잃어버린다. 정치적 감각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으며 능력도 사람 죽이는 일에만 잘 썼고 머리도 남 해치는 데만 기막히게 잘 돌아가서 측천무후나 서태후처럼 제도를 세우거나 국가를 주도적으로 이끌지도 못했고[* 그나마 양준이 적이 많았고 나름 측근들 복도 좀 있어서 정권을 잡고 어느 정도 꾸려가긴 했으나 결국 그 복은 자기가 다 차버렸다. 그리고 자기 감정대로 하려고 했던 일은 자기 목 메다는 데나 쓰이고 말았다.] 단기적인 안목만으로 일을 추구했으며 그마저도 권력추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당장 가남풍을 도와서 양준을 몰아낸 공신이었던 맹관은 제만년을 때려잡는 등 엄청난 활약을 했지만, 가남풍의 폭주에 답 없음을 느끼고 사마륜이 가남풍을 제거할 때 방관하게 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인간은 사마륜의 전횡을 방관하다가 [[사마경]]에게 찍혀서 죽는다.] 사마휼 문제로 가모나 장화와는 사이가 멀어졌고, 사마휼의 어머니 사씨를 높이는 문제에서 반대의견을 내세워 가남풍을 기쁘게 했던 [[배외]]조차도 어느 순간 가남풍의 폭주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가남풍 폐위를 가모나 장화와 같이 논의했을 정도였다. 사마휼과의 관계가 파탄났을 때쯤이면 막말로 가밀 같은 어리고 멍청한 놈을 제외하고는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데 엄청난 역할을 했던 공신들마저 다 비판자가 되어서 자기 편이 거의 남아있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가문빨을 이용해 명분과 지위를 차지하고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기세를 통해 허를 찔러 권력을 쥘 수 있었으나 사람들이 맘먹고 상대하자 맥없이 무너졌다.[* 애초에 가씨 가문도 라이벌이었던 위씨에 대면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았다.] 애시당초 저 가문빨이라는 것도 가문을 유지할 만한 능력있는 사람이 있어야 먹히는데, 그나마 그걸 그럭저럭 유지할 만한 실력은 있는 가모 같은 사람은 적을 만들어 버리고, 모함에 이간질까지 도지며 홧병나서 죽게 만들고 가밀 같은 놈이나 설치고 다니는 판에 그런 게 제대로 먹힐 리도 없다. 외모가 추한 거야 뭐 자기 잘못은 아니니 그렇다 쳐도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매우 많았다. 과시욕은 적어서 뭘 세우거나 전쟁하거나 행사하거나 하는 식으로 백성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으나 잠자리 상대를 족족 죽여버렸으니 착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온갖 중상모략을 통해서 권력을 잡았어도 정치적으로 공조 관계를 이끌어 낼수 있었던 [[사마휼]], [[가모]], [[장화(삼국지)|장화]], [[배외]] 등을 잘 이용했어야 했는데 다 내치고 말았다는 것은 정치적 감각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할아버지 [[가규]]는 조씨를 도와 [[후한]]을 망하게 만들었고 아버지 [[가충]]은 사마씨를 도와 [[위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으며 가남풍은 팔왕의 난을 불러 서진을 망쳐놨기에 이 3대의 가씨는 세 [[국가|나라]]를 망하게 한 '''삼가'''라고 불린다. 그런데 사실 이는 중국 특유의 끼워 맞추기에 가깝다. 가규는 한나라 멸망에 적극적인 공헌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조조의 신하였을 뿐이다.[* 물론 조씨를 거들어 후한을 멸망시키고 위를 세우게 한 이들도 있지만 그냥 조정에 임관하여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데 새로운 국가와 정부가 생기며 거기서 계속 자기가 하던 일을 이어간 이들도 있다.] 가충의 경우 위를 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맞지만 적어도 진나라 입장에선 개국공신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물론 가충이 자기 딸 못지 않거나 오히려 더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욕먹을 거리가 더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는 않다.] 반면 가남풍은 그런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 나라를 말아먹은 경우라 선대들하고 비교가 안 된다. 그리고 정작 후한을 말아먹은 가씨는 [[가후|따로 있다.]][* 이각과 곽사를 꾀어 '''삼보의 난을 일으켰다.''' [[가필(서진)|정작 저 작자의 증손자]]는 서진 최후의 충신이었으니 아이러니하다.] 결론적으로 가남풍은 제 가문의 영달에 눈이 멀어 천하의 질서를 어지럽혔고, 특히 쿠데타라는 선례를 만들어 군권이 있는 황족들이 대권을 노리도록 한 매우 나쁜 선례를 만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쿠데타의 원인 그 자체였던 사람이었다. '''[[패륜]]을 저질렀고, 무능한 황제를 옹립했으며, 황족을 마구 살해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