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사노동 (문단 편집) == 개요 == [[家]][[事]][[勞]][[動]], 집안일, 살림이라고도 한다. 이 둘 모두 고루 많이 쓰이는 단어다. 간단히 말해 집을 집답게 관리하기 위한 업무로서, 나름의 전문성과 인내가 필요한 엄연한 노동이다. 그래도 문명의 이기와 핵가족화에 의해 현대에 와서 난이도는 많이 쉬워졌다. 역사적으로는 [[가부장제]] 하에서 대부분 [[아내]]의 일로 여겨졌다. 다만 가정식[* 한국의 경우 90년대만 해도 남자가 집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져서 안 시킨다는 말이 흔했다.]이 아닌 [[요리사]]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남성이 맡아온 경우가 많다. 조선의 경우도 궁중요리사를 대부분 남자들이 맡았다. 근대 이전 가부장적 사회체제를 따른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참정권이 없었으며 공식적으로 직업을 가지기 불가능한 여건이 많았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는 아내의 일이었으며, [[내조]]의 핵심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도 사대부들 중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 같이 손수 요리를 하여 먹은 남성도 있었다.[* 의외로 조선시대에 남성의 요리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박지원 뿐 아니라 [[박제가]]와 [[정약용]]은 자기가 개발한 개고기나 된장 레시피를 교환하기도 했고, [[허균]]은 귀양 가서 할 일이 없자 본인이 직접 전국 미식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서거정]]은 게 덕후여서 온갖 게 요리를 개발해냈고 실학자 [[이덕무]]는 단 것을 좋아해서 카스테라 레시피를 적어두고 만들곤 했다. 종친이자 충청도 병마절도사였던 이교는 그 요리 실력이 정평이 나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데 요리사로 차출되기까지 했다. 이런 점을 보면 오히려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남자가 요리하는 게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수치스럽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것이 도리에 어긋나거나 부끄러운 일이었다면 양반 사대부들이 버젓이 요리했다는 내용을 자기 일기나 문집 등에 쓸 리가 없기 때문.[[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19315.html|#]]] 현대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맡는 성별의 경계도 사라져가고 있다. 집안 청소 같은 집안일로도 체력과 인지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https://m.yna.co.kr/view/AKR20211125036500009?section=international/all|#]] 가사노동은 특히 마무리를 짓는 사람에 따라 퀄리티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리고,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살림]]'은 불교의 용어로 "절의 재산을 관리하다." 를 의미하는 '산림(山林)' 에서 따온 어원에서 따왔고 의미가 확장되어 널리 쓰이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