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야/구성국 (문단 편집) ==== [[금관국]][* [[금관국|구야국]], [[금관국|금관가야]]]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었던 국가. 시조는 김[[수로왕]][*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4세기 이전에는 명실상부한 변한-가야의 으뜸 국가로, 한때 [[경주시]]-[[울산광역시|울산]] 권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사로국]](신라)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던 국가. [[2세기]] ~ [[4세기]] [[낙동강]] 하구의 [[철(원소)|철]] 매매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이를 통해 가야에 지배력을 행사할 만큼 국력이 신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 주도권을 잡은 대가야에는 금관국과 대가야의 시조가 본래 형제라는 건국 신화가 있는데 이는 금관국이 가야 일대에 영향력이 컸고, 몰락한 뒤에도 부잣집은 삼 년은 간다는 말처럼 가야권 안에서 상징적인 역사성을 인정받았으며, 동시에 후기에는 사실상 주도권이 대가야에게 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400년경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큰 타격을 받아서 멸망까지는 아니지만 국력이 크게 쇠퇴했다. 이후 가야의 주도권은 낙동강 상류 내륙의 반파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6세기 초에는 금관국 왕이 신라의 수도 [[경주시]]에 입궐하는 등 신라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가 531년경 《일본서기》에 기록된 '혼인동맹 결렬 사건'으로 인해 대가야의 통제력이 흔들리고, 금관국과 탁순국 등 신라와 인접한 소국은 더이상 신라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532년 마침내 금관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하면서 병합되었다. 2세기 ~ 3세기에는 구야국으로, 4세기 ~ 5세기에는 [[가라]], 임나, 수내라, 소내라[* [[순우리말]] [[쇠]]나라에 해당하는 [[고대 한국어]]의 음차로 지금의 '김(金)'해 명칭과의 연관성을 추정하기도 한다.] 등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사기]]에서 금관국이라고 하였다. 금관국은 주로 4세기 이후부터 멸망 이전까지 사용된 이름으로 보이며, '가라'가 고령 반파국을 가리키는 명칭이 된 이후 남쪽의 가라라고 해서 '남가라'라고 칭해진 것으로도 보인다. 가야 후기에 반파국이 주도권을 잡은 뒤에도 [[이진아시]] 신화나 '가라'(반파국) - '남가라'(금관국) 등의 이름으로 보아 다른 가야계 국가들과 금관국과의 연결 고리는 꾸준히 강조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몰락한 뒤에도 '원래 맹주'로서 한동안 가야 국가들 중에서는 무언가 주변에 어필하는 힘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왕 구형왕(김구해)은 [[김유신]]의 증조 할아버지([[김구해]] - [[김무력]] - [[김서현(신라)|김서현]] - [[김유신]])로 금관국 왕족은 '신김씨'로서 신라의 주요 귀족가문으로 정착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