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야멸망전 (문단 편집) == 개요 == 562년, [[신라]]의 [[진흥왕]]이 장군 [[이사부]], [[사다함]]에게 명령해 [[가야]]를 공격, [[백제]]와 [[야마토|왜]]의 지원군을 무찌르고 [[반파국]]을 집어 삼키며 [[가야]]를 최종적으로 멸망시킨 전쟁. 이 전투로 인해 전신인 [[변한]]으로부터 수백년간 한국 고대사의 일원이었던 가야가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한반도에는 오직 고구려•백제•신라만이 남아 이후 [[삼국통일전쟁]]까지 이어지는 삼국시대 후반부 판도가 완성되었다.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 [[관산성 전투]]와 함께 전성기를 맞은 6세기 신라의 대표적인 전쟁이다. 한때 가야 연맹의 최강국이었고, 거의 가장 마지막에 멸망한 [[반파국]](대가야)의 멸망 과정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비교적 자세하지만 그 외 나머지 가야의 멸망 과정은 여러 사료를 찾아봐도 명확하지 않다.[* 그나마 멸망 과정이라도 있는 나라는 대가야를 제외하면 금관가야와 아라가야([[안라국]])가 끝이다.] 어쨌든 562년에는 모든 가야 연맹국들이 멸망당한 것으로 보이며, 《일본서기》에서는 이 때 신라에게 멸망한 나라가 10개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선 신라는 555년 과거 [[비지국|비화가야]]가 있었던 지금의 창녕군을 장악하고, 행정구역을 설치했으며, 556년에는 거창 등 가야 서부로 가는 길목이자 백제 지원군까지 대비해 추풍령을 틀어막을 수 있는 감문(김천)에 하주의 주치를 옮기는 등 신라군 병력이 주둔하는 거점들을 설치했다. 561년에 세워진 창녕 척경비에서 진흥왕을 보좌한 장수 명단을 보면 멀게는 한성까지 당시 신라 전국의 사방군주(四方軍主)가 본인의 관할지역을 뒤로 하고 창녕에 집결한 것이 나오는데 이를 인접한 고령에 있는 대가야로의 총공격 준비와 관련시키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