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야멸망전 (문단 편집) === 대가야 멸망 === 561년 아라가야 멸망 이후 이듬해(562) 정월(1월) 신라는 [[다라국]]을 병합하고, 임나관가를 쳐서 부흥을 꾀하던 아라가야 잔존 세력을 완전히 진압했다. 2월 신라가 대가야를 쳤으나 백제가 도와 간신히 구원했다. 이에 신라는 백제가 대가야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음을 알아채고, 4월 추풍령(김천)에 군사를 두어 백제가 오는 길을 끊고, 성산산성(함안)과 종발성[* 김해, 과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대에 쫓겨 백제, 가야, 왜 연합군이 피신한 장소로 금관가야의 요충 지역이었다.]에 군사를 두어 왜군이 침략하는 것을 막아냈다. 562년 가을 7월, 신라에서 사다함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5,000명을 주어 [[반파국|대가야]]를 공격하게 했다. [[사다함]]이 대가야로 쳐들어가 전단문에 들어서 흰 깃발을 꽃으니 성안의 사람들이 두려워 어쩔줄을 몰랐다고 한다. 대가야가 조금 저항하며 [[백제]]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당시 백제는 도와줄 여건이 되지 않았다. 9월, 대가야가 계속해서 버티자 [[진흥왕]]은 대장군 이사부에게 20,000명의 병력을 주어 토벌하게 했다. 이사부가 대가야에 다다르자 [[도설지왕]]을 포함하여 모두 일시에 항복함으로써 [[반파국|대가야]]는 멸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