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세리크 (문단 편집) === 말년 === 이후 469~475년에 걸쳐 가이세리크는 반달 왕국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동로마와 서로마에 그야말로 처절한 보복을 가했다. 서로마는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판국이었으니 별다른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동로마는 지나번 가이세리크와의 싸움에서 1000척의 대함대를 잃은 여파로 제해권을 장악한 반달 왕국의 함대에 꼼짝없이 유린당할 수 밖에 없었다. 가이세리크의 함대는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와 [[아나톨리아]]를 비롯한 동로마 제국의 동방 속주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475년, 가이세리크는 [[레오 1세(황제)|레오 1세]]의 사위로서 뒤를 이어 동로마 황제가 된 [[제노(로마)|제노]]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동로마 제국은 이전에 서로마 제국이 그랬듯이 가이세리크가 건설한 반달 왕국의 지배권을 인정하였고, 가이세리크는 그 댓가로 자신이 다스리던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니케아-칼케돈파 교도들의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다. 사실 가이세리크를 포함한 반달족들은 절대다수가 니케아파(및 칼케돈)와 앙숙지간인 [[아리우스파]] 신도들이었기에 그의 통치 하에서 늘 그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가 논란이 되어왔기 때문이었다. 476년 8월, 게르만족 출신의 용병대장이었던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실권자인 [[오레스테스]]를 제거하고, 그의 아들이자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킨 후 이탈리아의 왕으로 등극하였다. 오도아케르는 가이세리크와 평화협정을 맺고자 하였고, 가이세리크도 이에 응하였다. 그에 따라 오도아케르는 해마다 반달 왕국에 보상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가이세리크의 지배하에 있었던 시칠리아를 얻었다. 477년 1월, 평생을 반달 왕국의 건설에 헌신해왔던 가이세리크는 88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가 반달족의 왕위에 오른지 49년 만의 일이었다. 요르다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가이세리크는 죽기 전에 아들들을 소집하여 서로의 욕망 때문에 나라를 분열시켜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가이세리크가 죽자 그의 아들인 [[후네리크]]가 [[반달 왕국]]의 왕위를 계승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