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도특설대 (문단 편집) == 미화 == ||소수민족들의 특수부대 가운데서 조선인 부대가 가장 강력했고 유명했다. 일본군, 만주군이 못 해내는 작전을 간도특설대가 가서는 거뜬히 해치우곤 했던 것이다. 특설대는 전투도 잘했지만 선무공작에도 능해 지방민들의 환심을 샀다. 작전 때 무자비하고 잔학한 일본군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조선인의 공적 평가에 인색한 일본인들도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는 ‘상승의 조선인부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만주군, 관동군 안에서 벌어지는 총검술, 격투기, 사격 등 무술대회에서는 특설대가 주로 우승기를 차지했다. 특설대는 문주의 5족 사이에서 경쟁하며 살고 있는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우리 동포들에겐 큰 긍지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각 교민 단체에서는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각종 연예단을 보내 위문했고, 뜻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부대가 쌓은 전투 경험과 군사지식이 조국 독립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 육사 출신 전 합참의장 장창오 육군대장. 1982년 11월 10일 중앙일보 기고||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창군 원로, 장관, 고위관료들은 수십 명에 달하지만 그들 중 자발적으로 당시 일을 고해한 사람은 없다. 잘해야 2006년 8월 세계일보 기자에게 당시 일을 담담히 털어 놓은 [[이용(1923)|이용]] 전 [[철도청장]] 정도이다. 심지어 미화하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써놓은 장창오의 글을 간도특설대 미화의 일반적인 논조이다. 그런데 위에 글에도 나오지만 누구를 상대로 싸웠는지가 나오지 않는다. 종종 간도특설대가 만주의 공비들을 상대로 싸웠다는 식의 글이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군도 아닌 만군에 복무한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 ‘만주에서 상대한 군대는 공산군이었다’. 즉, 당시는 독립군이 전부 궤멸하여 만주를 떠난 상태이고 공산주의자들만 팔로군 등의 중국 군벌들과 함께 남았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만주국은 사실상 일본의 괴뢰국이었고,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인 군대도 엄연히 항일군대였으니 이는 억지가 있는 주장이다.[* 애초에 제국주의가 판치던 당시만 해도 약소국을 돕는 컨셉이라도 취하던건 사회주의 세력이 많았기에(오죽하면 쑨원조차 중국 쌈싸먹을 궁리만 하던 기존 제국주의 국가 대신 소련과 손을 잡을 정도였다), 독립군이 이쪽으로 쏠리는 것도 어찌보면 인지상정이었다.] 혹자는 당시 만주 독립군 중 민족 계열은 궤멸하여 생존자들은 임시정부를 찾아 떠났고, 사회주의 계열은 중국이나 소련 측에 흡수되어 그들의 군대 안에서 독립군 활동을 했으니 사실상 독립군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주장도 하는데, 그래따짐 사실상 중국 국민당 직속부대나 마찬가지였던 [[한국광복군]]도 의미가 퇴색된다. 참고로 이때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들은 김원봉처럼 한국 광복군에 합류한 케이스도 있었고, 팔로군에 있다 해방 이후 북에 넘어가 [[연안파]]처럼 정치 세력을 형성한 케이스도 있었다. 물론 결국엔 김일성한테 죄다 숙청당하지만. 1937년 간도성 거주 조선인은 46만 명으로 총 인구의 71%이며 해방 후 또한 중국 당국이 공인한 옌벤의 “항일열사” 3,125명[* 일제 침략 초기부터 1945년 9월 3일까지 기준이다.] 가운데 조선인 비율은 3,026명(96.8%)이다. 즉 중국의 항일군으로 정의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나중에 이들의 다수는 [[6.25 전쟁]]에서 중공군 측 조선의용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89283|#]] 일본인 간도특설대 복무자인 고모리야 요시이치 만군 중위는 간도특설대가 상대하였던 항일군 세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들은 잡군이 아니고 반만항일군이라고 칭하며 실로 군기 엄정한 부대였다. 복장도 좋았고 장비도 중화기를 갖춘 부대였다. 그들은 물자를 조달할 때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부역 차출에 임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호감을 샀다.” 간도특설대 복무자 중 가장 유명한 [[백선엽]]은 자신의 저서 '대게릴라전-아메리카는 왜 졌는가'에서 자신이 추격한 게릴라들 중 조선인들이 많이 섞여있었다며, 자신이 동포들에게 총을 겨눈건 사실이고 이를 비판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했으나 끝내 '''명확한 사과'''는 죽는 날까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서 그는 “우리가 진지하게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들이 역으로 게릴라가 되어 싸웠으면 독립이 빨라졌으리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신현준(군인)|신현준]] 전 해병대사령관 역시 “그때 나는 만주국 내에 특별히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창설하려는데는 어떤 특별한 정치적인 목적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단지 하급 간부 요원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한 처지라, 내게 부여되는 임무를 완수하는 데만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라며 해방된 이후에도 별다른 심적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