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문제(동진) (문단 편집) == 생애 == 태흥 3년(320년), [[원제(동진)| 원제 사마예]]와 정아춘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3살 때 낭야왕, 7살 때 회계왕이 되었다. 영화 원년(345년), 무군 대장군이 되고 상서를 관장했으며 이듬해 2월, 황제 보좌에 참여했다. 태화 원년(366년) 10월에는 승상이 되고, 함화 원년(366년) 11월, [[환온]]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폐제(동진)|폐제 사마혁]]의 할아버지인 [[명제(동진)|명제 사마소]]의 이복동생이었으므로 사마혁의 작은 할아버지였다. 황제에 즉위한 후, 대사마 환온을 불러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은근히 양심이 찔리던 환온은 땀을 흘리며 아무 말도 못했다. 사마욱은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원제 사마예의 사랑을 받았고 풍채가 좋았다. 몸가짐이 단정했으며 학문에 관심을 보였고 서예를 좋아했다. 장성해서는 마음이 깨끗했고 욕심이 적었지만 큰 뜻은 없었다. 환온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친필로 '만약 진나라의 복이 오래 지속된다면 경이 이 나라를 섬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나라를 알아서 하라'라고 보냈다. 이에 환온은 정곡을 찔려 땀을 흘리며 대경실색했는데 그래도 환온의 위엄이 내외에 떨쳐 있어 사마욱은 항상 폐위될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태화 2년(372년) 7월, 결국은 재위 8개월 만에 53세[* 즉, 당대 평균수명을 고려하자면 [[찰스 3세]]와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의 동양판 대선배격이라 볼 수 있다. ]의 나이로 태극전 동당에서 사망하였다. 10월, 고평릉에 안장되었다. 동진 황제들의 명이 얼마나 짧았는지[* 거의 대부분 20대에 죽었고, 오래 살았다 해봤자 40~50대에 죽었다. 거기다 워낙 요절이 많아서인지 아버지-아들 순으로 계승받는 일도 드물었다. ], 동진 초대 황제의 아들인데 '''8대''' 황제였다. 그리고 동진의 여러 황제 중 제일 오래 살았다. 그만큼 동진이 얼마나 무력한 왕조였는지 보여 주는 인물이라 하겠다.[* 그야말로 선조 사마의가 진나라의 기틀을 닦고 진나라를 건국하기도 전에 죽었다면 진나라 건국 시점부터는 진나라가 서서히 망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당장 초대 황제부터가 암군이고 명군이 한명도 없는 (중국사 유력 국가들 중) 유일한 국가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