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쑤성 (문단 편집) == 역사 == 고대에는 북부는 토하라계 [[월지]]인, 남부는 티베트계 [[강족]]이 주로 거주했다. 강족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되 [[인도유럽어족]]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민족으로 고대에는 중동의 [[밀]], [[양(동물)|양]] 및 [[고대 전차]]를 비롯한 청동기 문물들을 토하라인을 통해 한족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흉노 연맹이 이 지역의 월지를 축출한 이후 [[한나라]]는 흉노 연맹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이 지역의 강족들을 정복하고[* 강족은 주 무기가 투창이었는데 이 때문에 상당수가 [[노궁]]으로 무장한 한나라 군에게 종종 무력하게 무너졌다.] 한족 농민들을 정착시켰다. 다만 토하라인의 영향력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노수호]]도 많았고 [[둔황]]의 경우에는 명칭 자체부터 토하라에서 기원하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마등도 토하라계 혼혈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다.] [[한무제]]의 서역 원정 이후 [[실크로드]]길에서 [[시안시|장안]]을 출발해 중국 쪽 시작점 부분으로 번영했다. 몽골고원과 티베트고원에 끼인 좁고 긴 지역이라 하서주랑, 하서회랑이라고 불렸다. [[삼국지연의]]에서 [[서량]](西涼), [[후한]] 13주 기준으로는 [[양주(중국)|양주]](凉州)라고 불리는 땅이 바로 이곳이다. 삼국지로 유명한 이 지역 군벌로 [[마등]]과 [[마초]], [[한수]], [[동탁]] 등이 있었고 [[강족]] 등 [[서융]] 기마민족의 근거지기도 했다. 여기에 [[서안]] 주변 지금의 [[산시성(섬서성)|섬서성]] 지역인 옛날 [[관중]] 땅과 배후지인 서촉(西蜀), 즉 지금의 [[쓰촨성]], [[충칭시]], [[윈난성]] 등을 합치면 옛 [[진나라]]의 강역과 [[한고조]] 유방이 [[초한전쟁]] 시기에 일어났던 지역이 된다. 역사적으로는 [[중국/역사|중국의 왕조들이]] 차지했으나 [[송나라]] 등 국가는 일부 지역을 차지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 지역의 한족들은 종종 티베트계 부족과 동화되어 반란에 합류하는 일도 많았다.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나 [[유구르족]]이 세운 [[하서회골]] 등이 유명하다. [[중앙아시아]]과 중국과의 통로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티베트]] ([[청해성]]과 [[사천성]] 서부 포함.)와 [[동투르키스탄]]([[알티샤르]])과 [[몽골]]([[내몽골]], [[외몽골]]과 [[중가리아]], [[부랴티야]])은 전통적으로 [[중화제국]]의 영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영토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사천성 서부의 티베트-버마계 부족들은 무역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관심이 없기보다는, 간쑤성 북부의 내몽골, 서남부의 티베트 고원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거대한 자연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통로를 지나는 간쑤성의 중요도는 실크로드 무역에 있어서는 필수였다. 하서회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 게다가 버마를 통하는 남쪽은 차마고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무역을 하긴 했지만 여기도 히말라야 못지 않은 자연 장벽이라는게 함정. 사천성과 인도를 잇는 육로 무역은 원나라 때 무슬림들이 이 지역에 대거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유기]]에서 [[파초선]]으로 부친 화염산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다만 실제 화염산이란 지명이 붙여진 산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투르판에 있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 무역이 번영하던 당시에는 비교적 부유하고 화려한 역사를 지닌 장소였다. 지역 소재 문화재 중에서 세계 문화유산인 [[막고굴]]이 가장 유명하다. 송나라 시기 이후 강남의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간쑤성은 실크로드 육로 무역이 쇠퇴하고 가뭄이 지속되면서 명나라 시기엔 극빈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화제국으로서는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간쑤성에는 [[회족]] 인구 외에도 명나라로 귀순한 무슬림 민족인 [[살라르족]], [[둥샹족]]이 [[둔전]]을 하며 이 지역을 몽골족으로부터 방어했으며, [[유고족]], [[보안족]] 및 [[하미시|하미]]에서 피난 온 불교도 위구르인 난민 여러 민족들도 같이 살았다. 청말에는 [[마화룡]]이 지휘하는 회족들이 봉기하였다가 [[좌종당]]에게 진압되고 이후 이 지역에 대기근까지 발생하면서, 상당수의 회족들과 살라르족이 티베트 암도 지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중국은 암도 지역을 간쑤성에서 분리하여 칭하이성을 신설한다. 유고족은 암도 지방 티베트인들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었으나 몽골계 [[보안족]]은 19세기 혼란기 와중에 주변 소수민족들의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