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양록 (문단 편집) == 내용 == 책의 저자인 강항은 1593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공조좌랑, 형조좌랑을 지냈던 문신이었다. 1597년에 휴가를 얻어 고향 [[영광군|영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을 맞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군량 운반을 돕고 여러 고을에 격서를 보내 [[의병]]을 모집하지만 적의 기세가 더욱 거세어져 영광을 공격하기에 이르자 결국 강항은 가족, 친척과 함께 배 두 척으로 피란을 떠난다. 하지만 뱃사공의 잘못으로 아버지의 배와 떨어지게 된 강항 일행은 아버지의 배를 찾다가 9월 23일에 왜적에게 잡힌다. 왜적에게 잡히는 과정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신주를 잃어버리고, 이후 바다 위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보게 되며,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그 후 강항은 일본의 [[쓰시마 섬|대마도]] 등을 경유하여 이예주(伊豫州, [[이요]]주, 현재의 [[에히메현]])의 대진성(大津城, [[오즈 성|오쓰 성]])에 유치되었다. 후에 섭진주(攝津州, 세쓰 주, 현재의 [[오사카부]] 북부와 [[효고현]] 남동부에 걸친 옛 행정구역)의 대판성(大坂城, [[오사카 성]])으로, 다시 산성주(山城州, [[교토]])의 복견성(伏見城, 후시미 성)으로 이송된다. 억류되어 있는 동안 세 차례에 걸쳐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1600년 봄에 귀국을 승인받는다. 그리하여 1600년 4월 2일에 귀국길에 올라 5월 19일에 [[부산포]]에 도착한다. 강항은 돌아온 후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오기까지 겪은 체험을 기록했는데 이때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뜻으로 건거록(巾車錄)이라 이름하며, 본인을 죄인이라고 낮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