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치아 (문단 편집) == 갈리치아 동부 (우크라이나령 갈리치아) == [include(틀:우크라이나 관련 문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Ukraine-Halychyna.png]] 전통적 의미의 갈리치아에 가까운 지역으로 오늘날 [[르비우주]], [[테르노필주]],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에 해당되며 [[루테니아#s-2|적 루테니아]]에 포함되는 이 지역은 [[키예프 루스]]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키예프 루스]]가 분열될 때 갈리치아 공국이 들어섰고 주변의 볼히니아 공국과 합쳐져서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잠시 [[루테니아 왕국]]이라는 타이틀도 획득한다.[* 중세 유럽에서 왕위는 [[교황]]만이 수여 가능한 것으로서 루테니아는 [[가톨릭]]이 아닌 [[정교회]]였지만 루테니아 왕국의 다닐로 왕이 가톨릭과 힘을 합쳐 [[몽골 제국]]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당시 교황이 힘을 더해주기 위한 차원에서 왕위를 승인해 준 것.] 그러나 왕위가 끊겨 [[볼히니아]]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갈리치아는 [[폴란드 왕국]]이 각기 지배하다가 두 나라가 [[폴란드-리투아니아]]로 합쳐져서 같이 지배를 받았으나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 때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이 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넘어갔다.[* 볼히니아는 [[러시아 제국]]으로 넘어갔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브루실로프 공세]]의 무대였으며 이후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다시 [[폴란드 제2공화국|신생 폴란드 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갈리치아 동부 지역의 [[우크라이나인]]은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당시 폴란드 최대의 소수민족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졌고, [[나치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를 다시 갈라먹으면서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소련 [[우크라이나 SSR]] 치하로 들어가면서 우크라이나로 편입된 갈리치아 동부 대부분 지역의 [[폴란드인]]들은[* 전쟁 전에는 르부프 주 인구의 57%, 타르노폴 주 인구의 50%, 스타니스와부프 주 인구의 23%를 차지했다.] [[오데르 강]] 인근의 [[포메른]]과 [[슐레지엔]] 등 새로 편입된 폴란드 영토로 추방되었다. 다만 지금도 동갈리치아의 최서단지역[* 프셰미실 일대]은 폴란드 영토이기는 하다.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이 지역은 [[소련]]의 어떤 다른 지역보다도 러시아계 국가와 낯선 지역이다. 하다못해 [[발트 3국]]도 양차대전 사이 독립국이긴 했어도 이전에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갈리치아 지역은 이전까지 줄곧 중·동부유럽 가톨릭 세력의 지배만 받아 오다가 소련에 편입되었다. [[1991년 소련 국민투표]]에서도 과반수가 찬성한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방[* [[키이우]] 시(찬성률 44.6%) 제외.]들과는 달리 갈리치아 3주는 찬성률이 20%도 안 되었다.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포함), [[폴란드 제2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보니 [[동방 가톨릭 교회]]([[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신자가 많다. 이 점은 우크라이나 타지역에서 주로 [[정교회]]를 믿는 것과는 대조된다. 비교적 자유주의적이고 관용적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 일대를 다스렸던 시절 폴란드인이나 우크라이나인이나 어느 정도 자치를 누리고, 민족주의 정당 및 단체 설립과 민족주의적 언어, 문화적 교육 같은 것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던 덕분에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들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 양쪽 모두 이 일대를 근거지로 하며 활동했다. 오늘날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민족주의]] 열풍이 심한 지역으로[* 주로 반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그러나 반폴란드 감정도 만만찮은데 20세기가 되기 전만 해도 [[귀족]], [[지주]]는 [[폴란드인]]이, [[의사]] 같은 전문직은 [[유대인]]이 다 해먹고 당시에는 주로 루테니아인이라 불렸던 이곳의 우크라이나인은 피지배층이었기 때문. 나치가 갈리치아를 점령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나치에 협력해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때려잡았다. 물론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나치에게 학살당했지만..] [[유로마이단]] 때의 핵심 지지 지역이었다. 참고로 폴란드도 갈리치아 서부 지역에 속하는 동남부 마워폴스카 지역이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