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상돈 (문단 편집) == 생애 == 1964년 8월 25일, [[경상남도]] [[진양군]] [[집현면]](현 [[진주시]] 집현면)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동초등학교와 대아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국립대학교가 아니면 대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학교 농업생물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학내 동아리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디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에 몸담았지만, 교도관으로 일하던 형님이 데모를 하지 말라고 해서 잡혀갈 정도로는 앞장서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4학년 때에 카투사로 입대하여 1988년에 전역하였다.[* 당시 군대 내에서의 폭력과 부조리를 목도하고 지금까지 잊지 않는다고 한다.] 군에 있으면서도 주말외출 때에 몰래 시위에 참가하고 1987년에는 [[백기완]]이 연설하는 곳에도 갔다고 한다. 군 전역 후 1992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암묵적 나이 차별이 없었던 일요신문에 입사, 정치부와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입사하자마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창립멤버가 된 후 앞장서서 활동했다. IMF 시기에 일요신문이 정규직 임금을 대폭 삭감하면서 계약직 기자들을 재계약 하나 없이 해고하자 5주간 파업을 해서 사측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그가 노조위원장이 되자 사측은 협상하려 하지 않았고, 곧 해고되었다. 배우자는 그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대학입시를 다시 해서 4수를 하여 의대에 들어갔다. 그는 약 4년간 보습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하며 생계를 꾸렸고 아내가 장학금을 타서 생활이 나아지자, 대학원으로 돌아가 2010년 2월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가 된 이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했고 [[최광식]] 문화체육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맡아 행정경험을 쌓았다. 보좌관 퇴직후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인권과 노동권 운동에 몸담았다. 엠네스티를 그만두고 나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시기 약 10개월간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시사평론가로 뉴스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당시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보도를 인용하지 말라는 방침이 있었으나 국정원이 이탈리아산 해킹툴로 민간인사찰을 진행했다는 의혹을 그가 처음 제기하면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