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감응유전설 (문단 편집) == 역사 == 이 가설의 기원은 생각보다 멀리 올라가야 하는데,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기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이의 특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순히 임신 당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특성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그 이전에 만났던 모든 수컷의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이것과 별개로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중시는 고대 사회에서 일반적이었으며 [[혼전순결]]을 깼을 때의 처벌도 강했다. 당시에는 물론 감응유전이라는 단어나 유전학적 이해가 없었을 테지만, "내 아이의 피에 다른 남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인식은 흔했다. 케케묵은 가설이었던 감응유전이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888년에 미국 의사 오스틴 플린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 >특이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전의 임신이 자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것은 동물 사육 업자들에게 잘 보고되고 있는데, 만약 순종의 말이 한 때 열등한 수컷에게 임신된다면, 이후의 새끼들은 반드시 첫 번째 수컷의 형질을 나타낸다. 인간에게도 같은 영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남편에 의해 여성은 전 남편을 닮은 아이들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머리카락과 눈의 색깔에 의해 잘 관찰되는데, 흑인에 의해 아이를 낳은 백인 여성은 그 후에 백인 남자의 아이를 낳더라도 흑인이 가지는 특징을 발현하는 것 같다.[* Flint, Austin (1888). Text-Book of Human Physiology (fourth ed.). USA: Appleton, New York. p. 797.] 하지만 독일의 아우구스트 바이스만 진화생물학자는 일찍이 감응유전설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했고 1890년대에 이 이론은 과학적 지지에서 벗어났다. 스코틀랜드의 동물학자 제임스 코사르 유와트와 독일과 브라질의 다른 연구자들에 의한 일련의 실험은 감응유전에 대한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Burkhardt, R. W. (1979). Closing the door on Lord Morton's mare: the rise and fall of telegony. Studies in history of biology, 3, 1-21.] 또한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이 또한 [[사회진화론]]이나 [[골상학]]과 같은 인종차별적 이론으로 급격하게 경도되었다. 19세기 이론가들도 감응유전이 일어난 사례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19세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수컷의 형질이 감응유전으로 인해 유전되었다는 것이 증명된 바 없다. 그래도 감응유전설은 19세기 후반의 인종차별적 신념에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 나치당]]은 [[아리아인]]이 아닌 남자와 아이를 가진 여성은 나중에 "순수한" 아리안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Jan Bondeson, A Cabinet of Medical Curiosities, 1999:159.] 2022년 9월부터 [[주식 갤러리]]에서 자신들의 [[성녀-창녀 이분법]]에 따른 [[비처녀]] 혐오를 위해서 이 감응유전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