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릉시/역사 (문단 편집) == [[삼국시대]] == 313년 [[고구려]] [[미천왕]]이 이 지역을 점거하고 하슬라(何瑟羅) 또는 하서량(河西良)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신라]]와 접해 있어서 이 지역과 삼척 일대까지 양국 간의 충돌이 있었다. 옥계면 일대는 고구려의 우곡현(羽谷縣), 연곡면과 주문진읍 일대는 지산현이 있었다. [[내물 마립간]]이 신라를 다스리던 4세기 말 시점에서는 하슬라(何瑟羅) 일대가 이미 [[신라]]의 영역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내물왕 42년 7월(397년), 하슬라에 흉년이 들어 죄수를 사면하고 세금을 면제하여 주다.] 5세기 중반 [[눌지 마립간]] 때에도 하슬라성(何瑟羅城)으로 등장해 [[신라]]의 북쪽 전선으로 고구려와 충돌한 기록이 나오다가[* 눌지왕 34년 7월(450년), 삼직이 고구려의 변방 장수를 죽이다.] 468년 [[장수왕]]의 삼척 공격과 함께 고구려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장수왕 56년 2월(468년), 신라의 실직주성을 빼앗다.] 6세기 초, 고구려와 신라 사이의 전쟁 기록이 사라지는 [[지증왕]] 시절에는 다시 신라 쪽의 북쪽 변경 하슬라주(何瑟羅州)로 등장한다. 이때 부임한 인물은 [[이사부]]로, 젊은 시절 하슬라의 [[군주]]로 온 512년에 [[우산국]]을 정복했다.[* 지증왕 13년 6월(512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다.] 이후 561년 건립된 〈[[창녕 진흥왕 척경비]]〉에는 하서아(河西阿)로 언급되는데, 비문에서는 우추(于抽)[* 3세기 중반 [[진한]]의 소국이었던 《[[삼국지(정사)|삼국지]]》의 우유국(優由國) 및 4세기 초 신라의 지명으로 기록된 《[[삼국사기]]》의 우유촌(于柚村)과 같은 지명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에 비정되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및 실지(悉支)[* 524년 건립된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도 등장하는 지명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실직주(悉直州)와 동일하며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이다.]와 함께 하나의 군(郡)을 이루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선덕여왕]] 때인 639년에는 신라판 [[광역시]]쯤 되는 하서[[소경]]이 되었다가[* 선덕여왕 8년(639년), 하슬라주(何瑟羅州)를 북소경(北小京)으로 삼고 사찬(沙飡) 진주(眞珠)에게 지키게 하다.] [[태종 무열왕]] 때 [[소경]]이 폐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