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명도 (문단 편집) === 탈북 === [[1994년]] 5월 [[탈북]]하였다. 미수금을 결제하고 재일교포 사업가의 투자 유치를 따내기 위해서 2주간의 출장을 나갔는데 당시 북핵위기로 해외외교관 소환령이 내려졌던 상황이었다. 그의 출장은 김정일 허락없이 장인인 강성산의 보증과 주석궁 경리부장[* 김정일이 아버지처럼 대우하는 사람이라 큰 고초는 겪지 않았다고 한다.] 전결로 나온 것이었고, 일정이 지연되어 같이 온 보위부원과 직원을 먼저 북한으로 보내고 사업일정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보위부에서 강명도를 찾으러나왔는데 선양 영사관에 있던 친구가 오해하여 보위부와 같이 돌아가면 잡혀가는 꼴이 되니 보위부 요원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그때 돌아가라는 말을 믿고 귀국하지 않고 버티게 되었다. 이처럼 나서자 보위부 요원들이 북경 대사관에서 짱박혀 놀다가 허위보고로 강명도가 행방불명이라고 평양에 보고했다. 그러자 화난 김정일은 보위부 체포조를 150명을 파견하고 죽여서라도 데려오라고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강명도의 출장은 애초에 김정일의 해외출장 금지령을 어기고 예외적으로 나간데다가, 북미 핵합의 전에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 전에 북한 엘리트들이 도망갈까봐 아니면 정보를 가진 핵심 인물들이 해외에서 납치당할까봐 김정일이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강명도는 평양외국어학원 출신에 보위국 대좌를 지냈기 때문에 외교관이고 보위부원이고 지인 혹은 친인척이라 별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죽여서라도 데려오라는 지시를 듣고 끌려가면 죽지는 않을테지만, 지난번 18호 개천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처럼 최소 2~3년은 혁명화급 처벌이 뒤따를 것이고, 이에 되돌아갈 길이 없다고 판단해 망명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다시 가느냐 죽겠다는 생각으로 탈출을 결심한 것. 처음에는 중국 공안 지인의 도움으로 위조여권으로 홍콩에서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가 일단 제3국인 독일로 도망가서 미국과 접촉했다. 그런데 자신이 제공한 정보와 달리 미국은 [[북미 제네바 합의]]를 해버렸고, 미국에서 자기를 북한에 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여 미국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탈출, 프랑크푸르트에 갔다가 한인교회에 안기부 요원들에게 속아서(!?) 한달만 남조선 구경한다고 들어왔다가 졸지에 귀순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강명도는 입국 조건으로 북에 남은 가족에 피해가 갈까봐 기자회견을 안하기로 하고 들어왔으나 안기부에서 [[김영삼|VIP]]의 강력한 요구로 기자회견을 강권하여 결국에는 북핵관련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은 [[북미 제네바 합의]]로 뒷통수를 쳐맞고 클린턴 행정부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북핵관련 합의는 미국에서도 반발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합의는 미국이 하고 [[KEDO]] 출자금은 한국과 일본이 78%를 제공해야 했다. 때문에 한국이 북핵 관련 정보를 외신에 제공하여 클린턴 행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주려고 했지만 미국의 강력한 반발로 한미관계가 악화되었고 안기부에서 외교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강명도를 외신과 접촉을 막고 안가로 다시 숨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강명도는 원래 안하기로 했던걸 바득바득 우겨서 시킨 안기부와 갈등이 있었고 북에 남은 가족들의 고초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강명도가 자살할까봐 안기부가 데려간 곳이 광림 교회로 그후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 [[1994년]] [[7월 27일]],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5개나 보유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5개나 더 개발한 뒤 이를 국제사회에 발표하고 미국에 알릴 예정이라고 북한을 탈북한 북한 정무원 교원 강명도와 [[김일성대학]] 상급교원 [[조명철]]이 귀순기자회견에서 밝혀 큰 충격을 안겼다. 그들은 북한은 핵탄두개발과 함께 [[핵]]탄두를 탑재할 로켓개발에 열중하고 양산체제로 들어갈 것이며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을 타개할 방법은 핵무기의 완성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핵무기 5개로는 북한에 충분하지 않으며 공개될 경우 국제적 압력으로 더 이상의 핵개발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34545_19434.html|강명도.조명철 귀순, 북한 핵탄두 5개 보유하고 있다고 밝혀 충격]]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800329101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8&officeId=00032&pageNo=1&printNo=15154&publishType=00010| 북한 핵무기 5개 보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80020910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8&officeId=00020&pageNo=1&printNo=22583&publishType=00010| 북한 핵무기 5개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강씨의 회견에서 국내 언론들은 믿을 수 없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900099102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9&officeId=00009&pageNo=2&printNo=8828&publishType=00010| 믿기 어렵겠지만 신중한 확인 필요]] 북한이 5개나 보유한 것이 가능한가라는 반응을 보였고 미국과 일본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900329103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9&officeId=00032&pageNo=3&printNo=15155&publishType=00010| 북한 핵무기 5개 보유 가능한가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34634_19434.html| 미국과 일본 IAEA, 강명도씨의 회견 내용에 당혹]][[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900329104012&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9&officeId=00032&pageNo=4&printNo=15155&publishType=00010| 북한 핵무기 보유 해외반응]] 당시 회견에 대해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Perry|월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1개~2개즈음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하고 미국 [[PBS]]와의 인터뷰에서도 이같이 밝혔다.[[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34636_19434.html|페리 국방장관 발언]]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300020910100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07-30&officeId=00020&pageNo=1&printNo=22585&publishType=00010| 북한 핵무기 1-2개 가량 보유 추정돼]] 탈북민 중에 고위급으로 김일성 강반석 일가는 물론 북한의 외화벌이 자금과 관리 돈세탁 구조를 잘 아는 고급 자원이라 국정원에서 유망주로 보고 반 강제로 산하 연구 기관 한반도통일연구원에 배정했으나 1주일만에 때려친 걸로 알려져 있다. 같은 평양 외국어대학 후배인 김동수 박사 말로는 연구기관이라 매일 출근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외교부나 통일부 국정원에서 질의에 자문이나 답변해야 되는 답답한 생활이라 북측 외교관이나 군인들이 거의 처음에는 대부분이 배정이 되고 자의로 그만두기로 하는데 강명도는 일주일만에 보고서를 백지로 내며 앞장에 "나는 나갑니다"라는 한줄을 달랑 남기고 최단기 퇴사 기록을 세우며 훌쩍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는 사업가로 활동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