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변칠우 (문단 편집) === 허홍인 === 허홍인 (許弘仁, ? - 1613) 본관은 [[김해 허씨]]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허홍인의 숙부 허정의 집성촌이 경상남도 의령군인데 이 곳은 김해 허씨의 집성촌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505005_013|#]] ] 허홍인은 유일하게 친부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김해 허씨는 조선시대에 121명[* 문과 15명, 무과 40명, 사마시 6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므로 이 중 한 명일 것이다. [[https://blog.daum.net/12501436/15084758|#]] 1612년 조령에서 박응서 등 강변칠우 일원들과 함께 은상인을 죽이고 은 600~700냥을 약탈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1613년 계축년 봄 박응서의 진술을 받은 관군에게 노비 덕남(德男)이 체포되어서 역모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고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504025_012|#]] 왕이 친국하자 허홍인이 역모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505002_001|#]] 처 선이(善伊)[* 고문 당시 21세로 "기운이 약해 형장을 견디지 못했으며 형신을 정지한 뒤에도 기절하여 인사불성이었다"한다.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504029_006|#]] ]가 체포되어서 4번 고문을 받았으며 허홍인이 서양갑과 만난 것의 의심된다고 말했다. 허홍인의 사촌동생 허경생(許景生)은 고문을 받았으나 사촌형 허홍인이 역모와 연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505002_002|#]] 허홍인의 숙부 허정(許淨)[* 음력 1525년 2월 21일에 식년시를 치른 허정과는 동명이인이다.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SA_6JOa_1525_002621&curSetPos=0&curSPos=0&category=dirSer&isEQ=false&kristalSearchArea=P|#]]]은 체포되었으나 늙고 병들어 아는 것이 없다고 진술했다. 허홍인 본인은 가족이 고문당할 때 도망갔으나 결국 체포당하고 자복했으므로 [[거열형|환형]](轘刑)에 처해졌다.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505008_01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