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선 (문단 편집) == 제작 방법과 생산 == || [[파일:라이플생산2.jpg|width=100%]] || || [[13개 식민지]] 시절의 강선 제작 방식 재현 || 강선이라는 것을 처음 개발할 시점에서는 수작업으로 장인급 기술자가 직접 제작했다. 당연하게도 대량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군용 무기로 도입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위에 언급한 프랑스의 라 히테 시스템(La Hitte system)도 강선 제작 공정의 어려움을 반영해서 포탄에 특수 가공을 함으로서 포열 내부의 강선 제작 과정을 단순하게 하려는 목적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군용 무기로 강선을 도입하려면 어느 정도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했다. 그래서 강선을 파는 장치를 개발해서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위 사진은 18세기 미국 식민지 시대에 라이플을 만드는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해당 방식은 작업대에 강선을 팔 총열을 장착한 후에 드릴이 연결된 핸들을 돌리면 기계가 총열안에 강선을 파주는 방식이다. 원시적이지만 기계를 도입함으로서 드디어 강선을 군용 무기에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 수작업이었던 극초기 때보다 작업이 수월해졌다는 것이지 아직까지는 강선을 파는 작업이 쉽지가 않았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크기의 강선 파는 용도의 드릴날을 준비해야 했으며 총열을 정확한 위치에 세밀하게 고정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했다. 당시의 기계 장치는 현대의 기준으로는 그냥 비표준 작업대나 마찬가지라서 전문가의 세심한 사전조정과 관리가 없으면 엉뚱한 곳에 구멍이나 뚫게 되는 등 작업 실패율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강선을 파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세팅을 제대로 한 후에 드릴날이 총열 안에 들어가서 얕게 강선을 1차로 판 후에 드릴날을 총열에서 뽑고 작업 상황을 살펴본 후에 드릴날을 조정하고 다시 작업을 반복해서 강선을 확실한 크기로 총열 내부에 파놓은 후에 작업 결과를 검토한 후 합격점을 줄 만하면 그제서야 기계에서 총열을 빼낸 후에 강선이 파인 내부를 청소하고 부드럽게 연마하는 등의 최종 마무리 작업을 수작업으로 따로 진행하는 등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여기에 더해서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핸들을 돌리는 사람은 보조인원에 가깝고 강선이 총열에 정확하게 파이도록 세부 조정하는 전문 기술자가 필요하며 양자의 호흡이 맞아야 작업에서 이상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아무나 강선 제작공정에 투입할 수가 없어서 대량생산이 힘들었다. 그래서 라이플이 머스킷에 비해서 상당히 비쌌던 것이다. 19세기에는 산업 혁명으로 인해 자동화 생산 기계가 나오면서 라이플의 생산도 엄청나게 편해졌다. 당시 주요 라이플의 생산량을 보면 프랑스의 [[샤스포]] 라이플이 200만정, 영국의 [[엔필드]] 패턴 1853이 150만정, 프로이센의 [[드라이제]] 췬트나델게베어가 115만정, 오스트리아의 [[로렌츠]] 라이플이 70만정, 미국 [[스프링필드]] M1861이 100만정 넘게 만들어졌다. 수작업으로 만들 수 있는 양이 아니다. 19세기 중반 부터는 라이플이 대량 생산됨에 따라 가격도 머스킷과 별 차이 없어졌다. [[브라운 베스]] 머스킷의 가격은 18세기 말을 기준으로 보통 3[[파운드 스털링|파운드]]였고, 이는 당시 미국화폐로 환산하면 14.25 US$였다. [[남북전쟁]] 당시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m1861 강선총 납품가는 14.75 US$였다. 다만 이런 기계가 없다면, 소총을 생산할 때 크게 시간이 걸리는 것이 총열이었다. 그리고 국영 조병창에서도 시간적인 여유와 충분한 자금 및 훌륭한 시설을 갖추지 못한다면 양질의 결과물을 대량생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는 드릴링해서 강선을 파는 작업을 기계화한 것 뿐이기 때문에 생산속도 증강에는 대규모의 시설 및 자금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서 총열을 파는 전용 작업도구를 이용해서 한번의 작업만으로 강선을 완전하게 파는 방법이나 총열 내부에 강선 모양이 거꾸로 새겨진 막대를 집어넣고 단조 작업을 통해 총열 내부에 강선이 찍혀나오게 하는 방법이나 화학반응과 전기반응을 이용해서 강선을 내부에 새기도록 하는 방법이나 얇은 금속판에 강선 패턴을 미리 작업한 후에 총열 내부에 삽입하는 방법같은 다양한 방법들이 군수공장에 도입해도 될 정도로 기술적 성숙도가 올라가서 강선 제조 공정이 정확하고 빠르게 작업이 가능하도록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발전은 거대한 규모의 전용 기계가 다수 설치된 전문화된 공장에서나 도입가능한 것이라서 이러한 시설을 구비할 수가 없는 경우에는 생산이 불가능하므로 대체품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대체품도 못찾을 수준이라면 앞서 언급했듯이 극초기형 강선 생산방식처럼 장인급 기술자가 수작업으로 강선을 드릴링해야 하므로 생산효율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과물도 신통치가 않게 된다.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레지스탕스]] 등의 게릴라 조직에서 홈메이드 소총을 만들 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총열]]과 [[탄창]]이었을 정도로 강선 파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이들에게 이미 강선이 파여진채로 지급된 [[스텐 기관단총]] 같은 물건은 더 좋은 총이 널린 정규군들에게는 악몽이었겠지만 그거라도 아쉬웠던 레지스탕스에겐 축복이였다. 그리고 내전이 빈발하는 [[제3세계]] 국가들은 산간 오지에 홈메이드 소총을 완전 수공업으로 제조하면서 총열에 강선도 파주는 장인급 기술자가 실제로 활동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