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수지 (문단 편집) == 연예계 활동 == [[1981년]] 중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가고 난 뒤 뉴욕에서 가수 연습을 하면서 [[1988년]]에 [[MBC 대학가요제]] 미국 동부지역 예선에서 금상을 받았다. [[파일:external/img.maniadb.com/121880_1_f.jpg|width=420]] 그 후 1년 뒤 가족을 [[뉴욕]]에 두고 귀국[* 본인이 어느 프로에 출연해서 털어놓은 과거 이야기로는, 당시 미국 한인 방송에 볼 일이 있어서 미국에 왔던 탤런트 [[송승환]](연극 [[난타]]를 기획한 사람)이 가능성을 보고 꼭 한국에 오면 연락해 달라고 했다고. 그래서 그 말만 믿고 가수가 되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어린 아가씨가 100달러만 들고 한국으로 덜렁 찾아왔다고 한다. 심지어는 가출인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캐리어도 1개만 대충 싸 들고 나왔다고. 당시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웠고, 자신의 고모가 저런 애가 어떻게 가수를 하느냐고 한 말에 크게 상처받은 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 1년 뒤에 [[윤상]]의 프로듀싱 하에 《[[보라빛 향기]]》란 앨범을 내는데 이게 대박을 친다. 사실, 강수지 이전 [[이지연(1970)|이지연]]이 청순가련 여가수 1호로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당대 최고 여가수로 인기몰이를 했으나, 1990년 8월에 끊임없는 루머로 연예계의 환멸감으로 느껴 은퇴하고 도미한 바람에 그녀의 인기를 그대로 흡수한 면도 있고 두 가수 모두 외모로 많은 남성팬을 기반으로 인기몰이를 했고, 그에 비례해 엄청난 여성 안티들을 몰고 다니기도 했다.[* 강수지 피셜에 따르면 방청석 맨앞에 앉은 안티들이 '미국에 돌아가라'를 비롯한 폭언을 적은 피켓을 대놓고 보여줬으며, 중학생 소년 팬들은 기가 죽어 눈치만 봐 제대로 응원도 못했다고 한다. 강수지는 가족들 부양하려고 한국왔는데 도로 미국 가라고 하는 건 뭐냐는 심정이었다고.] 이 모든 게 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나, 이지연은 이를 원인으로 가요계의 환멸을 느껴 은퇴했다고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지연과 강수지 모두 긴 생머리가 트레이드마크 였는데 이지연은 3집 활동을 시작하던 90년 여름에 팬들의 껌 테러로 숏커트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고, 강수지도 2집 활동하며 숏컷으로 변신했던 공통점이 있다. 1990년 8월 도미한 이지연과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방송 출연을 한 강수지가 함께 활동한 적은 없으나, 이후 이지연이 컴백을 시도하며 한국에 머무를 때 친하게 지내며 절친으로 2000년대 요리사로 변신한 이지연의 아침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청순 여가수 [[이지연(1970)|이지연]], 강수지, [[하수빈]] 3인방이 1988년, 1990년, 1992년 데뷔하여 2년마다 청순 여가수가 출현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그 명맥은 끊긴지 오래다. 보'''__랏__'''빛 향기인지, 보'''__라__'''빛 향기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표준어로 치면 보랏빛 향기가 맞지만 1집에는 보'''__라__'''빛으로 적혀져 있다. 그리고 2002년에 나온 강수지 베스트 앨범에서는 보랏빛 향기로 표기되었다. 방송에서는 둘 다 쓰며,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들도 보라빛 향기로 표기된 것이 있고, 보랏빛 향기로 표기된 것이 있다. 강수지 1집은 윤상에게도 중요한 앨범이었는데, 그가 직접 편곡을 한 첫 앨범이었다.[* 첫 편곡은 90년 2월 발매된 [[김민우(가수)|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였다. 희한하게 보라빛 향기 이후 발매된 [[안혜지(가수)|안혜지]]의 '댄스 댄스'는 송홍섭이 편곡했다.] 그 전에는 하광훈, 송홍섭과 같은 작곡가들이 그의 곡을 편곡해줬지만 강수지 1집부터 자신이 만든 곡들은 직접 편곡하게 된다. 특히 1집 타이틀 곡 <보라빛 향기>가 엄청나게 히트했다. 하지만 신인상 등은 받았음에도 가요 프로 1위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당시 경쟁 가수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서였는데, 당시 그녀가 데뷔했던 1990년은 [[변진섭]], [[이승철]], [[조정현(가수)|조정현]], [[김민우(가수)|김민우]], [[신해철]] 등의 발라드 가수들이 가요계를 씹어먹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전성기 동안 명곡들을 많이 남겼으며 지금도 강수지의 노래가 리메이크되고 있을 정도[* 대표적으로 하지원 주연의 내사랑 싸가지 OST에 수록된 [[클릭비]]의 리메이크와 [[SMROOKIES]]의 여자 멤버들이 보랏빛 향기를 리메이크한 사례가 있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원곡과 달리 리메이크 곡은 대체로 발랄한 락 스타일이 많다.]로 존재감이 강했던 가수였다. 이 노래의 주인공이 강수지 자신이 실제로 사랑했던 남자였다고 한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151320361001|#]][* 그리고 속편급(?)인 시간속의 향기도 그 남자를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1991년 5월 발매한 역시 윤상이 프로듀싱한 2집 앨범에서 [[흩어진 나날들]]로 데뷔 이후 최초로 1위를 차지했으며, 동시에 각종 수상을 휩쓸었다. 거기다 후속곡이었던 [[시간속의 향기]]까지 히트하면서 강수지는 정상급 가수로 우뚝 섰다.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2집의 판매량은 50만 장으로 강수지의 최고 히트음반이기도 하다. [youtube(ObM-_f99ZFo)] 강수지에게 데뷔 이후 첫 번째 1위를 안겨준 명곡 <흩어진 나날들>이다. 나중에 [[박효신]]이 리메이크했다. [youtube(K6bCcW6UwCI)] 강수지의 두 번째 명곡 <시간 속의 향기>. 두 곡 모두 2집 수록곡이며 이 곡도 가요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고 당시 강수지가 직접 출연한 오디오 광고 삽입곡으로도 나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이 노래를 작사한 강수지 본인이며, 뒤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은 [[윤상|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다. [youtube(4CqKpCnRDlg)] 2013년 [[콘서트 7080]]에 출연해서 부른 <보라빛 향기>와 <시간 속의 향기> 그런데 2집으로 한참 인기가 좋던 [[1991년]] 당시 인기 좋던 가수 [[심신]]과의 연애 사실이 언론에 흘러나오자 강수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교제 사실을 인정했고, 이로 인해 인기에 큰 타격을 받는다. [[미국]]에서 살아서 비교적 개방적인 성격이었던 강수지 자신은 열애 인정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청순가련 스타일의 강수지에게 열광하던 남성 팬들이 강수지의 연애 사실을 알자 싹 빠져나갔기 때문. 거기다 심신이 소녀 팬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탓에 [[안티]]가 대거 늘어 버렸다. 윤상이 아닌 다른 사람과 작업하면서 3집과 4집을 내는데, 1-2집 시절만큼의 인기는 회복하지 못하나 그럼에도 전체적인 앨범의 완성도로는 명반인 2집에 필적할만큼 뛰어는 퀄리티를 보여 준다. 특히나 4집은 2집, 7집과 더불어 강수지의 3대 명반으로 불리고 있다. 3집 타이틀곡 '''내 마음 알겠니'''는 여러 차례 1위 후보로 오르지만 최고 순위는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으며, 4집 타이틀곡 '''그 때는 알겠지'''는 MBC에서 최고 순위 1위(발라드 부분에서만), KBS에서 최고 순위 5위를 각각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다시 [[1994년]] 윤상과 오랜만에 함께 작업한 <아름다운 너에게>를 타이틀곡으로 5집을 작업하는데 이때부터 일본 진출로 인해 국내 활동이 조금씩 뜸해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인기 또한 조금씩 하락세를 타게된다. 타이틀곡 <아름다운 너에게>는 최고 순위 5위권으로 나름 인기를 끌긴했지만 1위 후보까지 오르는 데는 실패한다. 이후, <널 보내지 않아>, <흔들리지 마>[* 1998년 서회옥이 愛像一場重感冒이라는 노래로 리메이크했다.] 를 더블 타이틀격으로 내세운 6집 또한 최고 순위 10위권 정도에 머물며 다소 아쉬운 성과를 거두는데 곡 자체의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이러던 와중에 [[1995년]] 겨울에 낸 싱글 '[[For You(강수지)|For You]]'의 타이틀곡 <[[혼자만의 겨울]]>이 오랜만에 1위 후보에 오르는 큰 사랑을 받았으며, 수록곡 <[[필요한 건 시간일 뿐]]> 또한 각종 순위 프로그램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며 인기를 끌었다. 강수지에게는 실질적으로 마지막 리즈시절이라 볼 수 있는 음반. <혼자만의 겨울>과 <필요한 건 시간일 뿐>이 히트했던 1995년까지가 강수지의 가수로 정상에 있던 기간으로 당시 여가수 기근이던 그 시절 6년 가까이 롱런했다.참고로, 1990년 “보고싶은 얼굴”의 민해경," 나만의 것" 김완선, 1991년 5집 앨범 세곡이 연이어 빅히트한 김완선, “만남”으로 가수왕을 수상한 노사연, 1992년 "애수"의 김완선, "사랑은 차가운 유혹"의 양수경, 1993년 “애모”로 가수왕을 수상한 김수희,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의 최연제, 1994년 “난 널 사랑해”의 신효범, “이유같지 않은 이유”의 박미경 정도가 큰 인기를 얻으며 정상에 있었다. [[1996년]] 7집과 [[1997년]] 8집이 짧은 활동과 함께 인기를 못 얻으면서 크게 주춤한다. 7집의 경우에는 타이틀곡 <하데스>를 비롯한 수록곡 대부분이 상당한 명곡으로 구성된 명반이라는 평가라도 받은게 그나마 위안이지만, 8집은 앨범의 전체적인 평도 좋지않아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앨범. 이 무렵 강수지는 1995년부터 [[일본]]에서 싱글을 내면서 일본 활동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8집의 부진 후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다. 일본에서 방송 활동 및 가수 활동을 병행했는데, 성과가 별로 좋지 못했던 듯하다. 일본 활동 당시 [[은하철도 999]] [[뮤지컬]]에서 크레아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메텔]] 역을 제안받았으나 언어의 문제로 서브주연이라 할 수 있는 “크레아” 역을 연기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suruga-ya.jp/250016859.jpg]] (당시 발매된 싱글 CD. 크레아의 테마송)[* 당시 뮤직비디오는 [[https://www.youtube.com/watch?v=etZtX_lPR6w|이쪽]]으로.] [youtube(DOiGTiUY_pg)] 당시 뮤지컬 공연 장면. 비슷한 시기 국내에선 [[서세원]]의 '공포체험 돌아보지마'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1998년]]에는 타이틀곡 "하늘이여"가 수록된 9집을 내어 10위권의 괜찮은 성적을 내었고. [[2002년]] 그대사랑 등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싱글이나 앨범을 내었고 [[2010년]] 1월 27일 디지털 싱글 《추억은 눈꽃처럼》을 발매했다.[* 그런데 [[KBS 2FM]]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2010년 1월 7일자 선곡표에서 추억은 눈꽃처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음원을 라디오에 우선 공개했을 가능성이 있다.] 나름 10장의 정규앨범에 히트싱글 앨범을 낸 몇 안 되는 가수이기도 하다. 2010년 [[가족이 필요해]] 시즌 4에서 [[박준규(배우)|박준규]]를 남편으로, [[마르코]], [[김정민(1989)|김정민]], [[한선화]]로 자녀를 둔 '''Park's 패밀리'''라는 '''가상가족'''의 일원으로 출연했다. 출연 전 포스터 촬영을 했는데 청순한 이미지 그대로 나왔다. 박준규와의 금슬은 좋았지만[* 역술인 曰 "천생연분 사주"라고 한다.] [[김정민(1989)|시끄럽고 산만한]] [[한선화|딸들]]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TBS|서울교통방송]]에서 [[허참]]과 함께 《허참, 강수지의 행복합니다》의 라디오 [[DJ]]를 맡았었는데, [[2011년]] 봄 개편으로 인해 하차했다. 대신 [[TBS|서울교통방송]]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인 《[[http://www.tbs.seoul.kr/fm/NightTrip/|강수지의 밤으로의 여행]]》의 DJ를 맡았다([[2012년]] 3월까지). 2013년 12월 23일 부로 [[KBS 제2라디오]]에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방송하는 "메모리즈"에서 [[이소라(가수)|이소라]]의 후임 DJ를 맡아 잠시 진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