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신주 (문단 편집) === 무신론자여야 인문학자가 될 수 있다 자격 주장 === >이어령의 편을 든다는 건 우리가 보수화됐다는 거예요. 이어령의 보수성은 기독교로 넘어간 데서도 알 수 있어요. >'''인문학자가 어떻게 종교를 가져요?''' 인문학자는 고통의 폭이 더 넓어야 다른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는데, 그만큼 고통스럽기 전에 교회에 가는 거예요. 그럼 안 돼요. > >'''인문학자는 신을 믿는 순간 글을 쓰면 안 돼요.''' 왜냐하면 신에게 구원받고 위로받기 이전에 겪어야 될 고통들이 있거든요. 바닥까지 더 가야 해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작품이 나와야죠. 어느 정도 갔다가 교회 가는 사람들은 편한 길을 가려는 거예요. 이어령을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논리로 인문학자의 자격을 주장했다."종교인은 보수적이다. 그리고 종교인이 되는것은 고통을 외면하고 편한길을 가려 한다. 따라서 글을 쓰면 안 된다."라는 주장인데, 실존하는 영미와 유럽의 수많은 인문학자들을 불성립하는 존재로 간주하는 오류는 그렇다 치고 논리 구조 자체가 비약이 심하고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논증이 지나치게 허접하다. 스스로 말하듯이 인문학자라면, 인문학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를 그 '조건'과 동일시하는 것이 논리적 오류를 화법의 치장으로 가렸다 하는 것을 누구보다 눈치채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그 '자세' 의 필요조건으로서 '탈 고통의 거부'를 당연시하는 것 역시 학문적 입장에서 떠올린 한 가지 생각을 직업윤리로 비약시킨 [[확대해석]]이고, '종교를 가지는 것'이 곧 '고통에서 회피하는 것'인 데다 '고통을 적게 겪는 것'이 '인간 군상의 이해를 저해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끌어다 붙여야만 본인의 발언에 있기에 처음과 끝이 연결된다. 연단에서 와르르 말을 쏟아부을 때에는 청중으로 하여금 '그런가? 그런가? 그런가?'를 10여 초만 겪도록 밀어붙이면 마지막 말까지 도달시킬 수 있지만, 말 하나하나를 면밀히 펼쳐 보면 지극한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발상의 연쇄를 당연시하는 졸언이 된다. 논리를 보고 주장을 인정하기 전에 결론에 다다르기 위할 목표를 설정해 두고 견강부회를 시도했으며, 논증에 동의하기보다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을 포섭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음이 드러나 있다. 적어도 글을 쓰려면 주장을 위하여 논리를 비약하면 안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