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영훈 (문단 편집) == 여담 == *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 ‘[[벽창호]]’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말은 평안북도 [[벽동군]]과 [[창성군]] 사람 중에서 고집 센 사람을 일컫는 말로, 강 전 총리의 고향이 바로 평북 창성군이다. 압록강과 접한 국경지역으로 교통의 중심지였다. 벽창호의 고향답게 창성군과 벽동군에서 기르는 한우도 예로부터 힘이 좋고 동시에 말 안 듣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회고록 제목에 나온 ‘벽창우’는 여기서 따온 것이다.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동 주택가 골목에 살았다. 1953년 휴전 이후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강남개발 등 부동산 광풍이 몇 차례 휩쓸었어도 꿈쩍 않고 동네를 지켰다. 그래서 ‘부동산의 대가’보다 한 수 위인 ‘부동의 대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십년간 찾는 단골 이발소가 있었는데, 이발사가 강 전 총리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발사의 회고에 따르면 이발사가 강 전 총리에게 더 이상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실랑이를 벌였다는 일화가 있다. * [[바티칸]] 대사 시절 바티칸을 찾은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에게 국정방향에 대해 쓴 소리를 했는데, [[노태우]]가 이때부터 그를 마음속으로 존경하게 돼 후일 총리로 기용했다고 한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고 처음에는 민정당 당대표직을 제안받았으나 초선 의원이 대표를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고사했다. 그랬더니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은 [[국무총리]]직을 제안했다고 한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명]]인 [[물태우]]에 대해서는 “물은 세상의 근본이니 나쁜 뜻이 아니다"라고 했다. 노태우에 대해서는 전임 대통령과 비교해 유하게 정국을 이끌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은데 사실은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총리에게 맡긴 일은 일절 간섭하지 않았고, 자신 역시도 언제든지 그만둘 각오로 소신껏 일했다고 회고했다. * 총리 재임 시절 북한과의 회담에서 북한 측은 강영훈 총리가 자신들에게 의외로 강경하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강영훈 총리는 퇴임 후 인터뷰에서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임 후 한 인터뷰에서 인도적인 대북지원은 최대한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 17대 대통령 후보를 지낸 [[문국현]]이 인생의 사표라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91321|#]] 1995년 UNEP 한국위원회의 총재로 활동하였으며, 문국현과 함께 “북한에 나무를 심는 ‘평화의 숲’ 운동을 전개했다. * 군사반란을 막으려다 실패하고 반란세력에게 체포당한 점을 들어 [[장태완]]과 같은 유형의 장성이라 할 수 있으며 퍼스트 장태완이다. * 히로시마 유학 시절 딸 하나를 둔 일본인 미망인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목욕물을 받으면 중학생이긴 하지만 남자인 강영훈이 먼저 목욕을 했다고. 당시 한반도가 아주 남성 중심적 사회였음에도 일본의 남성 우선 문화에 강영훈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