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우석 (문단 편집) == 감독이 되다 ==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강우석은 농촌총각이 결혼을 못해 자살을 택하는 뉴스기사를 접하고 1988년 농촌총각이 도시여자와 결혼하려는 내용의 '달콤한 신부들'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제목이 이상야릇한 제목인지라 제작자가 역시 에로영화 조감독 출신답구만 하고 웃었다고 한다. 주연은 [[최재성(배우)|최재성]]이 맡았다. 하지만 서울관객 21,000여명으로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음 영화인 시험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학생들의 기사를 접하고 학생의 유서에 써져있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글귀를 모티브로 동명의 영화를 만든다. 서울 15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주연이었던 [[이미연(배우)|이미연]]은 단숨에 하이틴 스타가 된다.[* 그리고 얄궂게도 이미연은 [[여고괴담]] 1편에서 여교사로 나와 그 학생이 선생이 되었다는 우스개가 나왔다.] 이후에도 사회문제에 관한 여러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지만 개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1992년 영화인 [[최진실]] 주연인 미스터 맘마가 서울 22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여 영화 제작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3년에 [[투캅스]] 1편이 서울 86만이라는 대성공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영화사 [[시네마 서비스]]를 열게 된다. 당시 어머니의 소원이었던 전셋집을 사드리기 위해 어머니에게 돈을 내밀었지만 어머니가 강우석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 돈으로 영화사를 차리라고 했다고. 연출보다도 다른 감독들을 키우려는 방향도 노려보지만, 그의 연출작 외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어 위기를 겪는다. 그래도 제작을 꾸준히 하여 2000년대 와서 제작투자한 [[신라의 달밤(영화)|신라의 달밤]]이라든지 흥행 성공작도 나왔다. 또한 동시에 흥행작인 [[투캅스]]와 이후 작품인 1994년작인 마누라 죽이기가 각각 해외영화 [[표절]]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투캅스는 1984년작 프랑스영화 마이 뉴 파트너, 마누라 죽이기는 동년도에 개봉했던 역시 프랑스 영화 [[탱고]]의 표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여하튼 비난을 받았어도 서울관객 34만으로 흥행만은 성공했다. 당시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권력자이던 [[곽정환(영화제작자)|곽정환]] 서울극장 회장과 손을 잡았다. 이 둘은 성균관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이 곽정환-강우석 체제는 당시 여러 편의 히트작들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강우석 감독은 흥행 영화를 제공하고 곽정환 회장은 전국적인 극장 배급망을 제공했다. 2000년대 들어 만든 [[공공의 적]]의 불량형사 [[강철중]]은 [[설경구]]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각본의 힘을 얻어, 그의 작품 세계를 넘어 한국 영화계에서도 기억될 만한 명 캐릭터로 남게 된다. [[충무로(은어)|충무로]]에서 거의 수십년째 떠돌아 다니던 [[실미도(영화)|실미도]]의 시나리오를 강우석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모두 총출동 시켜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제작, 흥행에 성공시켜 [[멀티플렉스|멀티플렉스 극장]]의 도래와 함께 한국영화 최초로 천만을 돌파한다. 실미도의 성공 때문인지 21세기 들어 내놓은 그의 영화인 공공의 적 속편, [[한반도(영화)|한반도]] 등이 이어질수록 점점 영화 완성도가 촌스러워진다, 구려진다, 마초적이고, 국가주의적이다라는 평단의 비난을 맞게 된다. 과거 그의 영화에 우호적이었던 분위기와 급변해버린 상황이다. 이에 감독으로서 전력을 쏟아넣겠다는 각오로 만든 2010년 작 [[이끼(영화)|이끼]]가 연출 방향성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기존의 마초스러움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끼는 원래 다른 영화처럼 강우석 본인은 제작자로서만 기능하고 연출은 다른 사람으로 하려는 작품이었으나, 계획이 바뀐 경우. 본인은 '(억지로 잡고 했지만) 이런 스타일에는 안 맞고 지쳤다'라며 다음 이야기는 야구를 소재로 한 밝고 감동적인 영화가 될 거라고 언급했다. 그 공언대로 청각장애인 학교 야구팀을 소재로한 [[글러브(영화)|글러브]]가 개봉했는데 그럭저럭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역시 흥행은 실패했다. 공공의 적 2012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2013년까지도 나오고 있지 않다. 2012년에 크랭크인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설경구가 타워에 집중한 탓에 늦어지는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결국 공공의 적 2012 대신에 "전설의 주먹"이라는 영화를 만들어서 2013년 4월에 개봉했다. 여담으로 전설의 주먹은 강우석 감독의 20번째 장편 영화로 [[임권택]] 감독 이후로 많은 장편 영화를 만든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평생 목표가 50편 정도의 영화를 감독하는것이라고 한다. 2013년 작인 [[전설의 주먹(영화)|전설의 주먹]]은 평은 나쁘지 않으나 흥행이 완전 기대이하이다. 다시 공공의 적 1편의 작가를 재영입하여 강철중의 속편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감독했는데 [[역사 왜곡]]이라느니 [[창작물의 반영 오류|재현 오류]]라느니 개봉 전부터 말이 많다.[* 단순 [[창작물의 반영 오류|오류]], [[역사 왜곡|왜곡]]이 아니라 아예 다른 내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인건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었다 이거 하나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다. 사실상 픽션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봉일인 9월 7일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772047|홍보]]했지만 결국 흥행도 실패했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2019년 10월 [[곽경택]] 감독의 [[https://v.daum.net/v/20191018103039688|인터뷰]]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한 것이 알려졌다. 아무래도 최근 영화들의 연이은 흥행 실패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 듯 하다.[* 사실 영화 [[글러브(영화)|글러브]]나 [[전설의 주먹(영화)|전설의 주먹]]은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어도 작품성과 2차 판권 등으로 손익분기를 넘겼다. 아무래도 최근작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흥행 및 작품성면에서 완전 참패를 겪다보니 더 이상 영화판에 미련이 없는 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