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유 (문단 편집) === [[VS놀이|강유 VS 등애]] === '''라이벌 등애와의 누가 낫냐는 논쟁''' 또한 '''삼국지의 대표적인 얘깃거리''' 가운데 하나다. 당대에는 기록상 등애가 "강유는 영걸이지만 날 만나 곤궁해진 것"이라 자뻑하자 식견있는 자들이 내심 비웃었다고 한다. 즉 당대 인물들이 보기에 강유가 비록 등애에게 패배했지만 등애보다 능력이 부족한 인물로 치부되지는 않았다. 일단 빠와 까를 떠나서 삼국연의가 쓰이기 이전, '''당과 송대에 무성왕에게 제사를 지내며 안진경등이 무성왕에게 배향시킬 역대 명장 70여명을 등애는 계속해서 뽑혔지만 강유는 뽑히지 않았으며, 삼국지 후기 인물로는 등애 이외에도 양호와 육항이 뽑혔다.''' 이때 뽑힌 사람들은 삼국지의 커버 범위로는 [[제갈량]], [[관우]], [[장비]], [[장료]], [[등애]], [[황보숭]], [[주유(삼국지)|주유]], [[여몽]], [[육항]], [[양호]]인데 강유의 상관인 제갈량은 전대의 백기ㆍ한신, 후대의 이정 등과 함께 이 70여명 중에서도 상석에 배향되었다. 70여 명 뽑았는데 10명이 삼국지의 인물인 걸 보면 당대에도 삼국지의 인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 조조 등은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군사적 재능이 과소평가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선정 범위에서 군주들은 아예 처음부터 빼고서 군주 밑의 장수들로 한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조보다 더한 먼치킨들인 전한 건국황제 [[한고제|유방]]이나 후한 건국황제 [[광무제|유수]] 등도 명단에 없는 것을 보면...] 이해응(李海應)이 작성한 <계산기정>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순조 시기에서야 강유도 청나라 태공묘에 겨우 배향되어 명장의 말석으로 인정받았던 모양이다.[[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425A_0020_010_0170&solrQ=query%E2%80%A0%ED%83%9C%EA%B3%B5%EB%AC%98$solr_sortField%E2%80%A0%EC%84%9C%EB%AA%85%EA%B2%80%EC%83%89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BT_AA$solr_toalCount%E2%80%A07$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BT_1425A_0020_010_0170|해당내용]] 다만 해당 청나라 시기에는 삼국연의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기가 높았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