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유 (문단 편집) === 사마사와의 대조 === 삼국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영웅군상들 가운데 라이벌도 있고 친구도 있으며 증오의 관계, 애증의 관계도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중에 유독 특이한 두 남자가 있다.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진 않았고, 그랬는데도 마치 거울처럼 정반대의 길을 걸은 이들. 바로 이 남자, '''촉한의 강유'''와, '''조위의 [[사마사]]'''다. 우선 서로의 생애를 보자. 강유는 변방 호족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으며, 일개 협객에서 군중랑까지 승진하였고, 촉한에 귀순한 후로는 기반도 없이 독고다이 무인의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적수공권으로 권력의 중추에 올랐다. 그렇게 30여 년을 분투하였으나, 끝내 무리수와 온갖 도박수를 두다가 참혹하게 죽고 말았다. 반면 사마사는 일급 명문가인 사마 가문 출신으로, 천재적인 군략/정략가 아버지 밑에서 출세가도를 달린다. 강유와 달리 아버지의 기반을 물려받아 황제를 위협할 정도로 대권을 장악했고, 의외로 일찍 죽긴 했으나 천하는 그가 생전에 닦아놓은 안정적인 레일 위로 움직였다. 서로의 능력 역시 거울과 같은 정 반대다. 강유는 전술적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장군이라 할 만했지만 전략은 아주 괴멸적인 수준이었고 정략은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툭하면 촉한 정계의 샌드백이 되는 수준이었다. 반면 사마사는 전술가로서는 애매하지만 전략가로선 당대 일류, 정략 분야에서는 가히 신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 강유의 동료들인 장익, 요화, 호제, 동궐 등은 강유에게 의지가 되는 일이 좀 처럼 없었다. 그들은 강유의 북벌을 반대하거나 심한 경우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강유에게는 변변한 후계자라고 할 만한 이도 없었다. 말 그대로 독고다이, 외롭기 그지없는 길을 걸어간 남자다. 반면 사마사는 관서 전선의 명장 진태, 등애, 회수전선의 왕기, 사마사의 순욱이라고 할 수 있는 부하등 쟁쟁한 참모진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남동생 사마소가 그의 후계자가 되어 제국창업의 최후 실행자가 되었다. 사상적으로는, 강유는 이상적이고 원칙주의적인 정현의 학문을 계승했다. 사마사는 현학파를 죄다 숙청한 뒤 정현의 학문을 전면 부정하는 왕숙의 이론을 적극 지지했다. 이 두 남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다음의 어록들로 간결하게 요약될 수 있을 터이다. >(이러하니 조방은) 천서(황제의 계보)를 잇기에 불가합니다. '''신들은 한나라 곽광의 고사의 의거해 황제의 새수를 거두고 제왕으로 삼아 번국으로 돌아가게 하시길 청합니다.''' - 사마사 >바라건대 [[유선(삼국지)|폐하]]께서는 며칠만 더 치욕스러운 일을 참아내십시오. '''신이 위태로워진 사직을 다시 안정시키고 어두운 해와 달을 다시 밝히겠습니다.''' - 강유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사마사, version=264, paragraph=3.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