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제규 (문단 편집) === 감독 데뷔 === 1992년에 '흉조의 눈'이라는 영화의 감독직을 권유받았고 크랭크인 직전까지 갔으나 무산되었다. 집단 변사 사건을 역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로서, 스릴러를 기본으로 추리와 미스터리와 멜로의 요소가 가미된, 다소 정치적 메시지를 지닌 영화였다. 그러나 아니다 싶어서 거절했고, 1993년에 제작된 [[공포특급]]이라는 비디오용 옴니버스 공포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던 그는 김희철 감독과 이 영화의 에피소드 일부를 감독하며 처음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조심스럽게 극장 개봉 영화 감독 데뷔를 결정하게 되고, 1994년부터 자신의 입봉작인 [[은행나무 침대]] 시나리오를 직접 쓰게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는데 시나리오를 몇 백 번이나 수정하는 등[* 원래는 여관방의 침대를 쓰고 떠나가는 연인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수정해 가면서 전생의 이야기가 삽입되고, 심지어 중국의 유명 여류 작가에게 의뢰했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완성된 결과물이 판타지와 SF 혼합물이었기에 당시 영화 제작사들은 시나리오를 퇴짜 놓았다. 여태 그런 장르의 영화들은 망하기만 했기 때문.[* 그 전에 [[정우성]], [[고소영]]의 '구미호'라는 판타지 영화가 개봉되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SF/판타지 장르는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도 제작되기도 힘들고 성공시키기 힘든 장르다.] 더불어 한두 명의 주연이 아닌 여러 명의 주연이 등장하는 영화 특성상 당시 원탑 아니면 투탑으로 주연만 맡기를 원했던 대부분 주연급 배우들도 해당 영화를 거절했다.[* 심혜진을 제외한 나머지 배역들은 배우들이 수차례 교체되었다. 영화 속 한석규 캐릭터의 경우, 먼저 거론된 배우가 '안성기', 신현준은 '최민수', 진희경은 '강수연'이었다.] 영화 상영 초반 대박을 맞이하고 입소문이 타면서 장기 상영에 들어갈 즈음에 [[씨네21]]과 인터뷰 한 내용에 따르면 강제규는 '''만약에 '은행나무 침대'가 제작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국에서 SF 판타지 영화는 만들 수 없을 것'''이라며 제작자에게 자신의 비전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미 '구미호'를 제작했던 영화사 '신씨네'에서 그의 믿음에 부흥하여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시나리오를 최종적으로 다시 작성하여 캐릭터에 걸맞는 배우 캐스팅까지 완료했다고 한다. 한석규의 경우에는 평범한 마스크에 안경을 낀 도회적 이미지가 너무 강해 제작진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었다고 한다. 실제 극장 개봉 당시 전생 장면이 등장할 무렵에 다소 이질감을 느낀 나머지 관객들이 웃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강감독은 한석규의 탄탄한 연기력이 커버할 거라고 굳게 믿고 캐스팅 했고, 한석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드시 하겠다고 응했다. '황장군' 캐릭터는 당시 신현준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설정했다고 한다. 개봉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신현준의 데뷔작 '장군의 아들'을 본 강감독이 자신이 생각했던 '황장군'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져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수정할 적에 원래 설정되었던 우락부락하기만 했던 황장군 이미지를 신현준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강함과 여리여리함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수정했다고... 그래서 만약에 신현준이 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면, 강감독은 이 영화를 데뷔작으로 연출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 영화의 책임을 맡은 오정완 프로듀서도 영화 자체를 엎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신현준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직접 강제규를 찾아와 자신이 맡고 싶은 배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 배역이 애당초 강제규 감독이 캐스팅 하기로 했던 캐릭터 '황장군'이었다고 한다. 미단공주 캐스팅의 경우 당초 '깜찍한 이미지'로 설정하여 신인 여배우 오디션까지 했었으나, 조건에 맞는 여배우를 찾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진희경으로 결정되었는데 제작진 대다수는 진희경 캐스팅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영화계의 우려 반, 기대 반[* 은행권의 자본이 투입된 최초의 영화라는 점에서 충무로의 기대를 받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우려였다. '구미호'의 대 실패로 인한 한국형 판타지 장르에 대한 우려, 감독으로서 검증받지 못한 신인의 데뷔작이라는 것에 대한 우려,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큰 약점... 그리고 같은 날에 개봉한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는 유명 감독이 무려 7명이 연출한 작품인지라 더 비교되기도 했다.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이라는 당대 스타급 배우들의 캐스팅이었지만 이 배우들도 영화 촬영 기간에 주변인들의 비아냥을 들으면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으로 6개월간 제작된 [[은행나무 침대]]는 [[1996년]] [[2월 17일]] 설 연휴에 개봉하여[* 본래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1995년 12월에 개봉하려고 했었으나 제작 및 특수효과 후반 작업이 늦어지게 되어 개봉시기가 연기되었다. 때문에 촬영 후반부 즈음에는 제작사 신씨네의 신철 사장과 강제규 감독이 자주 갈등하고 다투는 모습이 많이 목격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4개월간의 장기 상영까지 하게 된다.[* 악역 '황장군'이 여태껏 등장한 한국영화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라는 점에 입소문이 타기 시작했고, 이에 여성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된다.] 최종기록은 서울관객 68만 명, 전국관객 2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영화로 강제규 감독은 각종 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을 휩쓸게 되며, 감독 및 시나리오와 영화 자체의 책임을 도맡아 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감독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두 번째 연출작 [[쉬리(영화)|쉬리]]의 큰 영광에 가려져서 부각되지 못했지만, '은행나무 침대'이후 강제규는 그가 직접 세운 '영화 발전소'라는 제작사[* 사실 '은행나무 침대'는 '신씨네'와 '영화발전소'가 공동제작한 영화다.]에서 만든 '지상만가'를 선보이게 된다. 성공적인 데뷔작을 선보인 감독과,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배우(신현준)의 출연으로 충무로에서 큰 관심을 모았으나 [[1997년]] 2월 22일에 개봉하여 흥행에서 참패하여 영화사는 도산했고 강제규 감독도 전 재산을 탕진하여 한동안 가족과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다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은 갈리는 편이다. 당시 미진했던 한국영화 제작환경속에서 잘 만든 영화라고 평가하거나, 당시 한국영화계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준을 엿 볼수 있다는 평이 호평이고, 이야기 없이 그저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에만 의존했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다.] 강제규 감독이 진 빚은 신현준이 모두 갚아줬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영화가 망하면 감독을 아예 포기하는 타 감독과는 달리 강제규 감독은 끝까지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남북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대국전'이라는 시나리오를 쉬리로 바꾸어 다시 제작 및 감독을 맡게 된다. [[쉬리(영화)|쉬리]]도 [[은행나무 침대]]와 마찬가지로 캐스팅 부터가 쉽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흥행메이커 [[한석규]]가 흔쾌히 승낙한 덕분에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전액 투자를 받게 되었으나, 나머지 캐릭터들의 캐스팅이 계속 바뀌었다. [[송강호]]가 연기한 '이장길'캐릭터는 [[차인표]] 등의 당대 스타배우들이 거절하면서 최종 낙찰되었고, [[신현준]]에게 캐스팅 제의가 갔던 '박무영' 캐릭터도 우여곡절 끝에 한석규의 추천을 받은 [[최민식]]이 최종 확정되었다.[* 쉬리' 이전의 제목은 '대국전'으로 신현준은 이장길과 박무영 역할을 동시에 제의받았었다. 당시 이장길 역할은 한석규가 연기한 유중원 역할과 비중이 거의 비슷했고 특성상 유중원을 움직이게하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자 본래 박무영 캐릭터보다 더 돋보이는 캐릭터였었다. 그러나 신현준과 차인표 모두 거절한 이후 배역 비중이 줄어들었고, 최종캐스팅된 송강호가 코믹한 이미지를 벗지 못한 탓에 이장길과 유중원 모두 캐릭터가 살지 못했다.] 그리고 우연히 주말극 '웨딩드레스'를 보던 제작진들의 눈에 띈 [[김윤진]]이 여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 [[1999년]]에 개봉한 쉬리의 결과는 흥행 '''대성공.''' 당시 최고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타이타닉(영화)|타이타닉]]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서편제(영화)]] 이후 10년도 안 되어 서울관객 100만 명 기록을 갈아치웠다. [[은행나무 침대]],[[쉬리(영화)|쉬리]]의 대성공으로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손꼽혔고, 이 여세를 몰아 '강제규 필름'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하여 [[단적비연수]],[* '은행나무 침대'의 후속작이다. 최근 '조선 미녀 삼총사'로 거히게 말아먹은 박제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베사메무쵸]], 울랄라 시스터즈, 몽정기, [[오버 더 레인보우]], [[블루(한국 영화)|블루]] 등등의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자로 활동한다. 2004년 강제규 필름은 명필름의 심재명과 'MK Pictures'로 통합하지만 2007년에 다시 분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