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국 (문단 편집) === [[신라]] [[진흥왕]] 때의 [[연호]] === ||<-5><:> '''[[신라|{{{#ffffff 신라의}}}]] [[연호|{{{#ffffff 연호}}}]]''' || || [[건원]][br]建元[br],,(536 ~ 550),, || {{{+1 ←}}} || '''{{{#ffffff 개국}}}'''[br]{{{#ffffff 開國}}}[br]{{{#ffffff ,,(551 ~ 568),,}}} || {{{+1 →}}} || [[대창(동음이의어)|대창]][br]大昌[br],,(568 ~ 572),, || 이전에 [[법흥왕]] 때부터 사용한 건원에 이어 [[551년]]부터, 대창(大昌)/태창(太昌)으로 연호를 바꾼 [[568년]]까지 사용했다. 551년은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으로, [[경상도]] 지역 국가이던 신라가 한반도 중부를 차지해 [[삼국시대]] 후반부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개국이라는 의미의 연호를 채택한 것으로 보이며, 혹은 진흥왕이 고작 7살의 나이로 즉위했고 재위 초기에 [[지소태후]]의 [[섭정]]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진흥왕이 10대 후반이 되는 551년부터 [[친정]]이 시작되었기에 이런 연호를 채택하지 않았나라고 추정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반면 태후의 섭정은 즉위 초기에만 한정됐고 이미 친정을 시작한 상태였다고 보기도 한다. 원사료 [[삼국사기]]나 [[금석문]]이나 섭정의 끝이 언제인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