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마무사 (문단 편집) == 역사 == 개마무사나 그 비슷한 형태였으리라 추정되는 병과는 기록상 고구려에서 3세기 초중반 [[동천왕]] 시기에 [[양맥 전투]]에서 철기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다. 역사상 철기라는 말은 철갑으로 무장한 병사 외에도 정예 기병대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 경우도 많아 분명하지는 않다.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세기 초엽 중국이 [[오호십육국시대]]로 들어섰을 무렵으로 추정한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중장기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무렵이므로 고구려에서도 마찬가지로 개마무사가 출현했으리라 여기는데, 고구려가 철광석이 풍부한 만주 일대를 영유하였으므로 중장기병을 양성하기 적합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초인적인 활약을 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지금까지 발견된 바 없다. 하지만 고대에 세계 최강의 병과가 중기병이었던 만큼 허약한 부대는 아니었을 터이다. 특히 북방의 소규모 부족들이나 상대적으로 고구려보다 군사기술과 기병 양성 능력이 떨어지는 한반도의 여타 국가들을 상대로 우수한 활약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 이들의 무장은 두꺼운 갑옷과 마갑, [[삭]]이라고 부르는 기병창과 [[고리자루큰칼]] 등 백병전용 무기였으며, 전술은 서아시아의 [[카타프락토이]]와 유사했다고 추측한다. 한민족의 개마무사(카타프락토이)는 말 품종의 개량과 전술의 발전으로 [[나당전쟁]], [[남북국시대]]를 거치면서 경기병으로 서서히 대체되기 시작했고 [[후삼국시대]]에 [[후백제]]의 군주이자 호남 지방의 군벌이던 [[견훤]]이 '철기병'을 운용했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한국사에선 자취를 감추었다. 고려 시대에도 중기병이 운용되긴 했으나 마갑을 갖춘 기병은 아니었으며, 기수가 중장갑을 갖춘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후 한국사의 중기병은 [[조선]]에서 [[두정갑]]을 쓰기 시작하며 더더욱 개마무사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어졌으며, 대한제국으로 칭제건원하며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한국이 제대로 된 중장갑 부대를 갖추는 것은 1970년대의 국산 전차 배치가 시작된 이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