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선문 (문단 편집) == 역사 == 개선문은 특히 [[고대 로마]]에서 성행했는데, 공화정기에는 개선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제정기에 접어들면서 [[팍스 로마나]]가 정착되자 개선문을 세울 승전의 기회를 얻지 못한 황제들은 공공사업을 통해 쌓은 업적도 개선문을 세울 만한 명예가 된다며 개선문 건립을 정당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로마 시대 이후에는 국왕의 권위와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인식되어 근대 유럽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개선문을 세웠다. 당시에 세워진 개선문 중 가장 큰 것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세운 [[파리(프랑스)|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개선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이 개선문이다.] 하지만 정작 건설을 명령한 나폴레옹 본인은 생전에 개선문을 지나지 못했다. 그가 개선문을 통과한 건 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한 후 유해를 파리의 [[앵발리드]]로 이장할 때인 1840년이었다. 반대로 나폴레옹은 [[베를린]]의 랜드마크이자 이후 근대 프랑스의 숙적이 될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 제국]]의 대표 개선문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의 첫 개선식을 치룬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