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연성 (문단 편집) == 오용 == 이 문서에서 설명된 대로, 개연성이란 즉 독자가 상황을 따라 올 수 있게 유도를 했냐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다만 사실성, [[현실적|현실성]]([[핍진성]]) 등과 혼동되어 오용되는 사례가 매우 많으며, [[사이다(클리셰)|사이다]] 시대가 온 후로는 단지 '맘에 안 드는 전개' 에 대한 전가의 보도로 오용되는 횟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즉 구체적으로 어떠한 점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기 힘들 경우 '개연성이 없다'는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퉁 쳐버리는 식으로 비판을 가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흐름과 전개가 모든 독자에게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개연성이란 [[핍진성]]과 달라서 주관적인 개념이다. 아무리 충분한 사전 정보가 있었더라도 독자 개개인이 원하는 방향성과 어긋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이다(클리셰)|사이다]]가 터지는 장면에서는 아예 개연성을 신경쓰지 않으면서, [[고구마(클리셰)|고구마]] 장면에서는 [[내로남불|개연성을 칼같이 따진다]].[* 이 때문에 작품에서 강한 주인공이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다 때려부수는 막장 전개로 치달아 대충대충 [[이야기|스토리]]를 전개시키거나, 주인공에게 도덕적 우위를 제공하기 위해 척 봐도 강한 주인공에게 시비를 거는 바보들만 적으로 나오게 되고 질적 저하가 일어나 그냥 [[사이다(클리셰)|사이다]]만 보여주는 작품이 나온다.] 별 이유 없이 상대방을 죽여도 그것은 속이 시원하기 때문에 호평을 하지만 불편한 장면에서는 억지스럽게 개연성을 호도하는 장면은 [[웹소설]] 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또한 개연성이 [[유행어]]가 되면서 극단적으로 상황에 대해서 '말이 되나' 만을 따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는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작품의 재미나 연출, 영상미, 액션, 아이디어 등은 등한시한 채 작품을 비판하기 때문에 종종 '[[충(속어)|개연성충]]'이라 비판된다. 주로 게임과 영화 관련으로 흔히 발견된다. 여기에 대해서 [[이동진]]은 장르영화에서의 개연성의 역할은 적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phero&no=2158359|링크]][* 또한 해당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phero&no=2158359|링크]]의 댓글에서 서술한 것처럼 [[다큐멘터리]]도 사실성·[[현실적|현실성]]이 높지만 선술했듯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연|우연성]]이 많고 개연성이 적어 감독 및 편집자의 의도가 개입해 진실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평론가처럼 인문학적인 지식을 끌고 와서 해석하려는 노력보단 유튜브에서 작품을 비판할 때 이런 개연성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는 [[사이다(클리셰)|사이다]]류 비판이 많다, 나무위키에서 비판 목록을 보면 주로 개연성이 주를 이루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을 개연성 하나로 물고 늘어지면 캐릭터를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닌 것이다. 대표적으로 히치콕 감독이 의도적으로 개연성을 신경 쓰지 않고 만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같은 걸작이 있다. 게다가 히치콕은 "난 논리에 관심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효과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작품성에서 개연성이란 비중은 상대적이거나 작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봉준호 감독조차 [[기생충(영화)|기생충]]의 모스부호 장면에서도 누군가 확인해 보지 않겠냐 질문에 상식선에 머물면 영화를 못 만든다라고 말한 적 있었다. 픽션은 기본적으로 완전할 수 없다. 당연히 [[핍진성]]과 개연성은 세세하게 분석할수록 어긋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중요한 것이 바로 [[연출]]인데,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묘사하냐에 따라서 설득력이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