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연성 (문단 편집) == 유사 개념 == [[파일:17f9659c3413a0c6d.webp|width=450]] 혼동하거나 착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기본적으로 '''개연성은 사실성, [[현실적|현실성]]과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작품 세계 내의 현실감과 관련된 개념은 [[핍진성]]이라 한다. 핍진성은 [[현실적|현실성]]과 관련이 있으며, 사실성과는 다른 단어이다. 현실성은 예를 들어 좀비라는 존재는 현실에 '실재(實在)'하지는 않지만, 이야기 내에서 좀비에 대한 [[설정]]이 일관되게 유지가 된다면 관객들은 좀비를 이야기적 '현실'로써 받아들일 것이다. 즉, 일관적 현실성(핍진성)은 이야기 전체적으로 설정이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실성(事實性, Actuality, Realism(리얼리즘))도 [[현실적|현실성]](Realistic, 리얼리스틱)과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873246|혼용]]([[https://preview.kstudy.com/W_files/kiss6/48801248_pv.pdf|내용 일부]])되는 [[https://www.etoday.co.kr/news/view/1420362|경우]]가 있다. 현실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를 뜻하고,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거나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가리키는데, 이는 일반 대중들이 사실과 현실이라는 단어를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과 현실이라는 단어는 엄연한 학문적 용어이기 때문에 대다수 일반인이 단어 뜻을 오용한다고 마치 표준어를 고치듯이 사실과 현실의 정의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학술적으로 정의된 개념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오용한다는 것을 이유로 '그게 그거다, 구분의 실익이 없다' 고 주장하는 것은 군중에 의거한 논리적 오류에 해당한다. 어쨌든 이렇게 두 단어를 혼용하는 것은 [[https://semaaa.seoul.go.kr/data/upload/attach/10000/19061/20211213131328466.pdf|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아예 둘 모두를 뜻하는 것을 Reality(리얼리티)라고 쓰기도 한다. 사실성은 현실에서 벌어졌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작품의 스타일로 재구성하는 것을 뜻하고, 현실성은 현실의 조건이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며 그에 입각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태도(즉, [[판타지]] 작품에서는 [[마법]]을 쓰는 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를 뜻한다. [[창작물의 반영 오류]](구 고증오류)는 사실성이 없는 부분을 뜻한다.] 애초에 현실은 온갖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 개연성이 별로 없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212260044260927|현실이 소설보다 더하다]](일본에도 [[https://hamusoku.com/archives/10624154.html|비슷한 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에어푸르트|에르푸르트(에어푸르트)]] 똥통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고 [[https://twitter.com/cheshirefeli15/status/1295603186187644934|개연성]]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썼다가 개연성이 없다며 팬들에게 비판받은 게 뻔하다는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80/read/48423264?|말]]이 나왔다.][* 다만 현실에서는 항상 상호 연관 관계 속에서 사건이 벌어지지만, 후술하듯이 관찰자에 따라 개연성이 달라지므로 그 이유를 사람들이 잘 모르면 개연성이 없어보인다. 선술한 [[에어푸르트|에르푸르트(에어푸르트)]] 똥통 사고도 바닥의 나무 판자가 낡고, 바닥 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하중 때문에 부서졌다는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가 현대에 와서도 드러나지 않으면 미스터리가 된다.] 개연성은 '''설명하는 방법과 [[인과]]'''에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유니버스(서브컬처)|세계]]가 전제하는 [[설정]] 안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며 앞뒤가 맞기 때문에' 납득이 되는 묘사라면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달할 때에도 추후에 일어날 일을 설명하기 위해 그 일이 전제될만한 설명을 충실히 묘사해 주거나 인과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개연성은 단순히 작품 내에서의 논리를 따지지 않는다. 작품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따진다. 앞뒤 이야기가 맞고 나름대로 흥미로울법한 구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설정놀음|재미없는 작품]]이 존재한다거나, [[창작물의 반영 오류|비사실적인 묘사]]로 가득 차 있지만 재미있는 작품이 존재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따진 경우고, 후자는 독자들의 시선에서의 논리를 따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작가가 창작을 할 때 개연성을 너무 공들여 신경 쓸 필요 없이 독자의 눈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논리를 맞추면 되겠다. 하지만 큰 줄기에서까지 개연성의 법칙을 간과한다면 깊이를 내기 힘들어 독자들에게 혼란이 오고 이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작가 스스로 만들어 둔 큰 줄기 상의 개연성이 무엇인지 신경 쓸 필요는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다소 맞지 않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스토리텔링 기법에 전제하여 논리의 중요성을 감추면 작품의 질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흔히 [[클리셰]]라 부르는 것들은 이러한 기법이 수도 없이 노출된 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너무 남발하면 진부함만큼은 감추기 힘들 것이다. 이 때문에 각종 창작물에서는 '''비사실적인''' 일들이 많이 나오지만, [[작가]]의 설명과 독자들의 이입을 방해하지 않는 '''개연성'''이 충분하다면, 기본적으로 독자들이 수긍을 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창작물의 반영 오류|현실 반영]]을 열심히 고려하면서 창작하다 보면 분명히 창작에 도움이 된다. [[이야기|스토리]]가 그만큼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이라는 말을 '그럴 듯하다, 있을 법하다'라고 [[핍진성]]과 유사한 것으로 풀이하면 현실 반영이 섬세할수록 현실성과 개연성이 크게 증가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실 반영이 작품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부피를 너무 늘리지 않는 선 안에서만 그리한다. 다시 말해 스토리 라인에서의 현실 반영은 스토리 라인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만 한해서 작품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뜻. 충분한 개연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 [[창작물의 반영 오류|현실 반영이 없어도]] 작품의 질은 우수할 수 있다. 반대로 스토리 라인에 직접 영향이 없음에도 현실 반영에만 집착하거나 현실 반영이 오히려 스토리의 개연성을 저해하면 현실이 잘 반영되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설정]]과 개연성은 분명히 다르다. 설정은 [[유니버스(서브컬처)|세계]]를 지배하는 '''기본적인 법칙'''이다, 현실의 물리법칙같은 것으로 절대 변하지 않는다. 개연성은 할 법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 할 리 없는 행동을 한다는, 어색함과 위화감 정도의 수준이다. 절대 '''법칙''' 수준까지는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실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어떤 선한 등장인물이 갑자기 헤까닥 맛이 가서 밑도끝도 없이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자. 이는 개연성 측면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수준의 결점이다. 그러나 사람이 갑자기 성격이 변하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설정 오류]]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설정 오류|설정이 어긋난 경우]]는 문학적 [[핍진성]]에 더 가깝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설정 오류|설정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설정 오류|설정에 오류가 발생하면]] 반드시 개연성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설정 오류]]를 별것 아닌 경우로 치부하는 경우 대부분이 창작물이니 허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반박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사실 허구성이나 오류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설정 오류로 인해 발생한 개연성과 핍진성의 하락을 지적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간의 의사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극이다. 아래에는 유사개념 사례가 여럿 포함되어 있는 삼국지 관련 야사 중 하나이다. > 삼국시대에 관우의 부하인 주창은 적토마를 타고 다니는 관우를 항상 보좌하면서 그가 필요할 때마다 청룡언월도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주창은 평소에 천리를 간다는 명마 적토마와 같은 속도로 달리기를 할 수 있었고 이 능력으로 관우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관우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이유를 묻자 주창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 "제 발등에는 비모(飛毛)라 하는 털이 한가닥 있는데 이것 때문에 적토마와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 이에 관우가 비모를 뽑으라고 명령하자 주창은 망설이다가 털을 스스로 뽑아버렸으며 이후 빠르게 달리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이 말과 같은 속도로 달린다"라는 것이 현실성과 관련된 개념이다. 현실성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야사는 현실성이 없는 썰도 많다는 걸 이미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은 큰 반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비모가 있으면 빨리 달릴 수 있다"라는 것이 [[설정]]이다. 또한 "비모가 있으면 빨리 달린다고 했는데 비모가 없어지자 보통 사람과 같은 속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핍진성]]이다. 즉 이 짧은 야사는 현실성은 좀 없지만 나머지는 꽤나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는 셈. 문제는 개연성인데 관우가 자기 부하의 능력을 자진해서 약하게 만들 유인이 없다. 즉 관우가 저기서 비모를 뽑으라고 명령하는 부분이 개연성인데 이 부분이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이 야사를 보는 이로 하여금 굉장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요소가 적절히 완성되어도 개연성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야사가 개연성이 없다는 건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는지 이후 적의 계략에 걸려서 비모를 잃는 것으로 수정된 판도 있다. 뜬금없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부하의 능력을 없애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강대한 능력을 가진 적의 능력을 없애려고 계략을 쓰는 것은 말이 되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