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연성 (문단 편집) == 주의점 == [[소설]] 뿐만 아니라 [[만화]]나 [[영화]]를 비롯, [[이야기|스토리]] 등의 [[내러티브|서사]]를 다루는 그 어떤 창작물에서도 개연성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고,[* 문학 뿐만 아니라 다른 법학이나 의학(병리학이 특히 그렇다) 등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개연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개연성은 그 자체로 논리학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또 보다 높게 평가받는다. 개연성은 곧 논리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그 논리적인 부분의 차이가 차원이 다른 몰입감과 감정이입 등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한국]]에서는 개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감이 있다. 이른바 [[떡밥 회수]]라는 것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떡밥#s-2.4]]을 잘 뿌려서 잘 회수하면 [[이야기|스토리]]에 대한 평이 좋아지고, 반대로 떡밥을 잘 안 뿌리거나 떡밥을 많이 뿌려놓고 [[떡밥 회수|회수]]를 못하면 평가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나무위키]][* [[떡밥]]이나 [[복선]] 회수 안한, 또는 개연성이 맞지 않는 작품을 졸작으로 판정하는 문서가 많다.] 포함 한국 [[서브컬처]] 팬덤 전반이 떡밥 회수나 [[복선]]이 드러나는 것, 개연성이 맞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며 [[사이다(클리셰)|사이다]]가 유행하게 되면서 이 성향이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창작자가 여러 해석을 열어두기 위해서 은유나 상징으로 한 연출이나 문장을 보고 "떡밥이네" 하고 단정지어서 생각했다가 나중에 구체적인 설명이 안 나오면 "떡밥 회수를 안 했다."라고 항의하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또한, 영상 매체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스토리]]가 글과 글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출]]과 이미지, 음향으로 설명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대사로만 따라가다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는 일반적인 관객일 경우에 2회차, 3회차를 거듭하면서 해소되곤 한다. 재미가 있다면 개연성을 조금 희생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창작물을 더욱 즐기기 위해 개연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때 그때의 연출과 전개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무시하고 작중에 표현된 바가 개연성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작품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때문에 작품성은 좋은데 개연성 오류가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상황이 많다. [[설정 오류|설정에 무리가 있는 부분]]이 생기더라도 독자들이 크게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상관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파고들어 개연성 오류라고 지나치게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나 연재 중인 작품에서 중간중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마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개연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무조건 '''개연성이 없다'''라는 말을 오남용하는 것의 영향이다. 엄밀히 말해서 [[떡밥]]([[복선]]을 포함한다)이 미리 투척되는 것은 개연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추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원인이 설정되어 있고, 그 원인이 나중에 드러난다면 그 사건은 완벽하게 인과적이고 개연적인 사건이다. 단지 독자가 예상할 수 있게 미리 그 원인을 '보여주지' 않았을 뿐, 작중에서 그러한 사건은 이미 일어난 것이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화장실신|화장실에 가는 장면]]이 묘사되지 않았다고 해서 생리적 현상을 처리하지 않았으니 개연성이 없다고 하지 않듯[* 다만 흔치는 않아도 [[화장실신|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이런 게 나오지 않았냐면서 해당 작품의 개연성이 없다고 일부러 잘못 지적하기도 한다.]이 말이다. 정말 개연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큰 것은 미리 떡밥이 제공되지 않았을 때가 아니라 [[미회수 떡밥|뿌려진 떡밥이 회수되지 않은 경우]]이다. [[떡밥#s-2.4]]이 미리 제공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문제점은 순수하게 작품 자체의 '''논리적, 과학적인 차원의 개연성'''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독자의 감성 및 본능''', 그리고 '''장르의 관습''' 때문이다. 진화론적, 뇌과학적으로 인간은 이야기, 서사에 대해 특정한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것을 인과적으로 예측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려면 미리 원인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것은 미리 예측을 하여 급격한 변화와 충격을 감소시키려는 인간의 본능과도 연관된다. 게다가 오랜 세월 축적된 장르적 관습으로 인해 특정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현대의 창작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영화이고, 할리우드 영화에는 많건 적건 [[미스터리]] 장르의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만화, 소설 등 여러 매체에서는 미스터리적 요소가 많이 개입되어 있고, 미스터리 장르의 특성상 미리 단서를 주고 감상자가 능동적으로 짐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가 미리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 떡밥을 제공하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떡밥에 의한 예측은 논리적인 경우도 있지만,[* 물론, 그렇다고 꼭 본격추리소설 수준의 장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는 영화의 특성상 완전한 추리가 불가능하다. 단지 약간의 느낌을 미리 가질 뿐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추리소설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조차도 완전히 미리 추리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는 논리와 별개의 관습이나 창작물 자체의 한계에 의한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범죄물에서 너무 범인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초반부터 나오거나, 로맨스물에서 초반에 이미 누군가와 결혼을 하려는 여주인공이 비춰진다면, 그 상대방은 범인/남주인공이 아닐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하게 된다. 관습적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고, 또 그게 정답이라면 이미 시작하자마자 끝난 이야기라서 이야기로서 팔아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창작자의 특정한 의도가 있다면 이런 법칙마저 깨뜨릴 수 있다. 어쨌든 이런 태도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개연성과 [[떡밥#s-2.4]]이란 것은 작품 전체를 놓고 판단할 문제기 때문이다. 추리하길 좋아하는 [[복선]]덕후, [[설정덕후]]들이야 사전에 설명이 무조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사후 설명만으로도 작품의 개연성은 충분히 챙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용사를 보필하던 충신이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리고 난 후 본색을 드러내 새로운 마왕이 되고자 한다는 줄거리의 작품이 있다고 하자.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리기 전에 복선이나 [[설정]]을 깔아놓지 않더라도 이 충신이 왜 용사를 도왔는지, 이제까지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긴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숨겼는지 등 설명을 차후에 충분히 하면 개연성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배신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할 독자들에게 사후 설명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작품의 완결성 내에서 설명이 제대로 된다면 작품의 개연성은 깨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순차적으로 서술이 되어있지 않다 하여 개연성에 대한 시비를 남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자세다. 개연성에 대해 진지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다면 작품이 완결된 후 논하자. 그 이전에는 지나친 [[반전]]으로 몰입도가 떨어진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