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연성 (문단 편집) === [[호러물]]의 경우 === [[호러물]]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을 다루는 장르의 특성상 [[현실적|현실성]], 개연성과 거리가 멀다. [[https://goeonair.com/news/article.html?no=17239|기사]]. [[코즈믹 호러|뭔가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찜찜함을 이끌어내는 기법이자 장르가 [[호러물|호러]]다. 이렇게 정보([[떡밥]])를 [[미회수 떡밥|의도적으로 주지 않아]] 아이러니하게 공포적 개연성을 성립시키는 [[장르]]이다. [[미회수 떡밥|설명되지 않음]]과 기존의 이야기들을 파괴하여 얻는 공포감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기존 정보들을 어떻게 파괴시키냐, 어떤 정보들을 해명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단, 개연성을 파괴한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개연성 = 떡밥은 아니기 때문에 갑자기 캐릭터가 현실에서 할 법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연성의 파괴의 의의는 기존의 정보 변질에 있지 [[미회수 떡밥|해명되지 않음]]이 아니다. 따라서 개연성이 있는 호러물도 충분히 있으며 이런 작품은 사람들이 작품에 몰입하기가 쉬워져 다른 장르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의 경우 개연성 부족을 오히려 독자들이 [[핍진성]]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토 준지]]의 만화가 그런데 사람이 갑자기 달팽이가 된다거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사람 머리를 한 기구가 돌아 다닌다거나 개연성이 없는 장면이 굉장히 많음에도 스스로 그러한 괴기스러움을 컨셉으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사람들도 개연성 문제라기보단 오히려 [[핍진성]] 문제로 받아들이고 잘만 본다. 오히려 저기에 '갑자기 사람이 달팽이가 되는 게 말이 되냐'라고 따지는 사람이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가라면 이런 괴기스러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연성 파괴와 다르게 작중 내에서 인간 관계라던가 하는 문제에서는 개연성을 착실히 지키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갑자기 뜬금없이 귀신이 나타나거나 사회에 괴현상이 벌어진다고 해서 주인공이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앞뒤에 안 맞는 짓을 하진 않는다는 것. 즉 작가가 '의도적'으로 파괴한 것과 그 이외에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의도적 파괴 이외에 부분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위에 예시를 든 이토 준지 만화의 경우가 그런데 저런 괴기스러운 부분 외에는 개연성이 굉장히 잘 지켜진다. 예를 들어 [[사거리의 미소년]] 편에서 주인공을 사랑하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주인공을 죽이려 드는 건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마력에 홀렸다'는 장치를 만들어 두었고 [[소용돌이(만화)|소용돌이]]에서는 마을에 온갖 기괴한 일이 벌어지는데 절대로 마을에서 떠나지 않는 주인공 일행이 어색하지 않도록 느껴지기 위해 주인공이 속 마음으로 '이 정도 일이 벌어지면 떠나려고 하는 게 정상인데 그런 생각조차 안 드는 것에서 이미 우리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라는 한줄평을 하도록 만들어놨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저 한줄 때문에 사람들은 작품 내에서 개연성이 있다고 느껴서 작품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며 반대로 저 한줄이 없었다면 아무리 [[호러물|호러 만화]]여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왜 도망을 안 가냐는 생각이 들어 불편하게 작품을 보는 독자들이 많았을 것이다.[br]흔히 말하는 '호러 영화의 클리셰'들이 하는 지적도 이와 유사하다. 이런 클리셰들은 호러만을 위해 상황을 갑자기 악화시키거나 등장인물을 멍청하게 만들어 버리는데, 이 과정에서 개연성이 뭉개져서 관객들이 편안하게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