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지 (문단 편집) === 산업화 이후 === [[산업혁명]]으로 토지보다 노동력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거지는 '토지를 확보하지 못한 떠돌이 농민'이 아니라 '공장이 있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더욱 배척받게 되었다. 산업사회에 접어들어 이런 떠돌이 예능인, 직업군이 이상한 것으로 치부되고 사회체계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일부로 예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그 정체성을 명확히 갖추고 정체성을 수호할 만한 집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많은 직업 혹은 인종'들이 핍박받았는데 이러한 핍박과정에서 거의 모든 거지들은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대인]]과 함께 '떠돌이 [[집시]]'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폭발한 [[홀로코스트]] 이후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재조명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산업화 이전에는 거지가 많았다. [[미셸 푸코|그러나 지금은 복지시설이나 정신이상자들을 치료하는 기관에 바로 입원시키는 일이 많고,]] 산업화에 따라 많은 거지들이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1131번 지방도|516 도로]]같은 위험한 토목공사 등에 끌려가 노동에 동원되었다가 사망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근대 서구 사회에서는 중세 시절 당시의 ‘신성한 가난’이라는 종교적 이념을 벗어던진 후 빈민들에 대해 가혹한 태도를 취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빈민과 유랑민들을 구금하여 노역을 시키는 라습하위스(rasphuis)라는 기관이 만들어졌는데, 이곳에서는 재소자들에게 브라질나무(brazilwood)를 대패로 깎는 일을 시켰다. 선명한 붉은색 염료의 재료가 되는 이 나무는 재질이 너무 단단해서 대패질이 극심한 중노동이므로 누구도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빈민들에게 이 일이 돌아갔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대패질을 하도록 시킨 다음 저녁에 결과물의 양을 재서 기준량을 채운 사람에게는 식사를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식사량을 줄이든지 아예 굶겼다. 붉은 먼지가 몸에 붙어 마치 온몸에서 피가 나오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재소자들은 오직 저녁 한 끼 얻어먹기 위해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해야 했다. 심지어 이런 기관에서도 교정이 안 되는 빈민은 물이 차오르는 지하 감옥으로 보냈다. 이곳에 갇힌 사람은 간단한 펌프 하나를 주어서, 익사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펌프질을 해야 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도 다시 일어나 펌프를 움직여야 한다. 게을러서 가난하게 되었으니 노동의 소중함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이 감옥의 명분이었다. 근대 초입에 빈민은 성인은커녕 구금과 강제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종의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12/21/S3VHRMHR7JE4FCUVY4VKIRMT4M/|이윤 추구를 정당화한 스콜라 철학… 초기 자본주의 문을 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