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창읍 (문단 편집) === 서변리 === 서변리(西邊里) 원서변 마을과 원동변 마을 사이의 냇물인 모곡천(毛谷川)은 본시 원동변 마을서쪽 끝에서 남동쪽 사지마을을 거쳐 양평마을 앞에서 아월천에 합류해다. 이 모곡천이 범람하면 수해가 심하므로 직강공사를 하여 지금과 같이 동쪽으로 바로 흐르게 하였다고 하며, 옛날에는 모곡천의 동쪽에 원동변 마을이, 서쪽에는 원서변 마을이 자리했으므로 동변리·서변리로 나누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강물이 남쪽으로 흐르는 것으로 하여 그 상류를 북으로 삼아서 동, 서를 나누었다고도 한다. 원서변(元西邊), 사지(沙旨), 사동(沙洞), 원동(院洞)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모찔·모곡(毛谷) 서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월천초등학교, 거창농협월천지점 등이 있고, 옛 읍외면과 월천면사무소 소재지였다. 근래 원서변 마을도 "모곡"·"모찔"로 부르고 있다. 약 500년 전에 남하면 지산에서 해주 오씨가 옮겨와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서남쪽 낮은 산 사이에 영산(靈山)골·흰비선골·집골·샛골·밭골·장삿골·자지능골 같은 작은 골짜기가 있었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막재·달성고개 같은 잿길이 있다. 마을의 서쪽에 애머리밭들 서남쪽에 대한(大旱)들 남쪽으로는 부치기들이 있고 동쪽에는 번답들 동남에는 굴평들·검은들이 있다. * 사동(沙洞) 사기막골 마을 서북 1킬로미터 산골짜기에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어서 "사기막골"이라 하였다. 1800년께 선산 김치구(善山 金致九)가 모곡(원동변마을)에서 옮겨살게 되었고, 밀양 변씨도 가지리에서 함께 옮겨 오게 되어 두 성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한말 모곡방사촌(沙村)이었고, 1914년 읍외면 동변리(東邊里)에 속했다가 1937년 월천면 서변리에 따르게 되었다. * 사마, 사마리 옛날 사마(司馬) 벼슬을 한 사람이 있었다 하여 사마리라 한다. 한말까지 음석방(陰石坊)에 속했으며 1914년 서변리(西邊里)에 속하게 되었다. * 새보들 : 마을 서쪽의 논들을 말한다. * 찬물내기들 : 마을 남쪽에 있는 논들이다. 땅이 낮아서 찬물이 많이 생겨서 이름되었다. * 아월천(阿月川) : 마을 동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내이다. 이 내는 사방이 트여 달빛을 잘 받아 땅거위가 노는 것을 밤에도 볼 수 있어 아월천(鵝月川), 아드내라고도 하며"아달내""아드내" 라고도 부른다. * 원동(院洞) 서원마 조선 숙종(朝鮮 肅宗)때 (1675 ~ 1720) 세운 용원서원(龍源書院)이 있었던 곳이므로 서원마라 불리며 모곡방 용원서원리(毛谷坊 龍源書院里)였던 곳이다. 마을 뒤의 산세가 나팔 같고, 나팔의 앞을 막으면 아니된다 하여 집집마다 사립문을 달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