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건륭제 (문단 편집) == 가정 관계 == 수많은 후궁이 있었지만 건륭제 사이에서 자식을 낳은 이는 [[효현순황후]], [[계후 호이파나라씨|계황후]], [[효의순황후]], 철민황귀비, 숙가황귀비, 순혜황귀비, 유귀비, 흔귀비, 서비, 돈비로 열명에 불과하다. 혜현황귀비, 용비는 총애를 받은 것으로 보이나 자식은 없었다. 할아버지 [[강희제]]가 여러 후궁에게서 수십명의 자식을 본것과는 대조적이다. 열 명의 후궁 가운데 아이를 둘 이상 낳은 이는 [[효현순황후]], [[계후 호이파나라씨|계황후]], [[효의순황후]], 철민황귀비, 숙가황귀비, 순혜황귀비, 흔귀비다. 아이를 낳은 이들 대부분이 보친왕 시절부터 함께한 후비인 것이다. 건륭황제가 즉위한 뒤에 들어온 후궁 중에서는 효의순황후와 흔귀비만 아이를 여럿 낳았다. 이들이 건륭이 총애했던 후비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남아있는 초상화를 보면 화법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통적으로 매우 마르고 좁은 얼굴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초상화임에도 상당히 미인들이다. 건륭제의 후궁은 출신이 다양하고 이야기도 많아서 여러 야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건륭제의 계후들은(계황후와 효의순황후) 역대 [[청나라]] [[황후]]들 가운데서도 출신이 제일 한미하다. 계황후는 팔기군에 만주족이긴 하지만 집안이 호이파나라 씨로 최고의 만주족 가문은 아니었고 효의순황후는 팔기군 출신이긴 하지만 포의 가문에 심지어 민족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이다. 후궁들 역시 출신이 다양한데, 또한 [[조선]] 출신 조상을 둔 숙가황귀비, [[위구르]] 족인 향비, 팔기군도 아닌 [[한족]]인 순혜황귀비 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