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건원릉 (문단 편집) == 야사 == 능이 위처럼 [[억새]]풀이 무성하게 된 사연은 이성계가 죽으면서 고향 [[함흥시|함흥]]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지만[* 참고로 왕으로 추존된 태조의 조상들의 왕릉은 함흥 주변에 있다. 부친을 비롯한 조상들 가까이에 묻히기를 염원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방원은 개국 시조인 부왕을 멀고 먼 함흥에 안장한다면 나라의 위신과 제사 지낼 때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가까이 있는 곳에 모셔야만 자기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 도성 근처에 모시려고 했다. 그래서 유언에도 부합하고자 함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건원릉을 단장하는 꼼수로 대신했다고 한다. 또, 이성계는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있는 [[정릉(서울 성북)|정릉]]에 같이 묻히길 원했으나 신덕왕후를 굉장히 싫어하던 [[태종(조선)|이방원]]이 유언을 무시하고 새로 묏자리를 알아봐 묘를 썼고, 죄책감에 평소 고향을 그리워하던 이성계를 위해 그의 고향인 함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함흥에서 억새를 가져올 때, 그냥 파서 가져오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억새가 다 말라죽으므로 이를 고민하던 태종이 짜낸 지혜가 사람들을 일렬로 줄줄이 세워서 함흥에서 한양까지 억새를 릴레이 형식으로 운반해와서 심었다는 설화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건원릉에 불을 질렀는데 건원릉의 정자각에서 엄청난 바람이 나와서 불을 다 꺼버렸다고 한다. 왜군이 몇번을 불 질러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포기했다고. 이외에도 여러 야사가 많다. [[분류:동구릉]][[분류:태조(조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