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걸복치반 (문단 편집) === 남량 멸망 === 414년 정월, 남산(南山)에서 오색빛 구름이 쏫아올랐다. 걸복치반은 이를 길조라 여겨 매우 기뻐하며 좌우 대신들에게 말했다. > 금년(今年)에 내가 천하를 평정하여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 같구나! 이후 무기를 정비하고 병마를 훈련시켜 전쟁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남량]]의 [[독발녹단]]이 타계한부(唾契汗部)와 을불부(乙弗部)를 토벌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걸복치반은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뽑고 "움직인다!"를 외쳤다. 놀란 군신들은 모두 반대하고 나섰으나 태부 초습(焦襲)만이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며 출정에 찬성하였다. 걸복치반은 즉시 2만 보기를 이끌고 남량의 도성인 낙도(樂都)를 습격해 포위했다. 남량의 태자 독발호대(禿髮虎台)가 성벽에 의지해 수성했지만 걸복치반은 공성을 시작한지 열흘만에 낙도를 함락시켰다. 낙도에 입성한 걸복치반은 논공행상을 신속히 끝낸 뒤, 평원장군 걸복첩건(乞伏捷虔)에게 기병 5천을 주어 남량왕 독발녹단을 추격하게 했다. 그리고 진남장군 걸복겸둔(乞伏謙屯)을 낙도에 주둔기키고 사로잡은 독발호대와 남량의 문무백관, 백성 만여호를 도읍 부한(枹罕)으로 이주시켰다. 독발녹단은 반란을 제압하긴 했으나 도성이 함락되어 휘하 장수와 병사들이 모두 도망치고 음리록(陰利鹿)만이 그의 곁을 지켰다. 더이상 저항할 힘이 없어진 독발녹단은 그 길로 서진에 항복하니 남량이 멸망하였다. 걸복치반은 독발녹단을 상객의 예로 예우해주며 표기대장군, 좌남공에 봉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독발녹단을 짐독으로 독살하였다. 또, 저거몽손의 부추김을 받은 독발호대가 그의 누이인 왕후 독발씨, 무위장군 월질낙성(越質洛城)과 걸복치반의 암살을 모의하다 일이 새어나가 관련자들 모두 처형당했다. 걸복치반은 진왕(秦王)을 자칭하고 백관을 설치하면서 독발녹단의 또다른 딸을 새로 왕후로 삼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