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검도 (문단 편집) == 역사 == ||[youtube(WN9SDF05nX0)]|| || 1897년 격검을 수련하는 어린이들의 모습. ||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郎) 박사가 기존의 유술을 청소년 체육 교육 수단으로 정립하여 [[유도]]를 창시하였다. 이때부터 일본 학교는 유도를 비롯하여 [[궁술]]과 [[격검]] 등 다양한 전통 무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1895년 [[일본]] 전통 무술을 통괄하는 단체로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가 설립되었고, 이후 1906년 대일본무덕회에서 무덕회류검술형(武德會流劍術形)을 제정하였다. 1912년에는 [[경시류]]목태도형의 영향을 받아 대도(大刀) 7본과 소도(小刀) 3본인 [[일본검도형|대일본제국검도형(大日本帝國劍道形)]]을 만들었다. 몇몇 유파의 검호들이 모여서 중등학교 교육용으로 정립했다. 훈련과 대결 등은 직심영류, 나카니시파 일도류 등에 있던 죽도 훈련법과 당시 유행하던 격검이 도입된 것이다. 특히 수련시의 연격(키리카에시) 시합에서만 쓰는 작은 칼놀림은 두 유파 각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굳이 계보를 따져보자면 경팔류[* [[우시와카마루]]의 스승인 [[키이치 호겐]]의 검술이다. 즉 3대 원류보다 한참 오래된 검술.]-[[넨류]]-츄조류-토다류-[[카네마키류]]-[[오노하일도류]]-[[나카니시파일도류|일도류 나카니시파]]-[[북진일도류]](를 포함한 여러 유파)-검도 순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북진일도류의 직계 후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치바 슈사쿠]]의 검술 68수 같은 죽도 기법이 현대 검도에도 사용되지만, 검도 자체는 여러 유파의 검객들이 모여 창시하였다. 실제로 수련이나 교검을 하여보면, 북진일도류와 검도는 꽤 다른 편이다.] 1920년 대일본무덕회는 검술의 이름을 검도(剣道)로 바꿨는데, 이는 유술(柔術)을 유도(柔道)로 바꾼 강도관(講道館)의 가노 지고로의 행적을 따라한 것이다. 이전에도 검술을 종종 검도라고 부르긴 했으나, 검도라는 이름이 굳어지게 된건 대일본무덕회 때문이다.[* 즉, 대한검도회가 내세우는, "'검도'라는 표현은 한자문화권의 공통된 것이며 곧 '검술'의 동의어"라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메이지]] 정부도 그전까지 사민평등을 내세우며 폐도령을 내리고 사족을 때려잡았지만, 전쟁대비를 위해 서민 학생이 쉽게 익히면서 동시에 무사도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사족의 잔재가 남아있는 검도 보급을 장려했다. 이러한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더욱 확산되어 모든 학생들이 [[유도]], [[검도]], [[나기나타]] 등의 무도를 필수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고, 일본은 미군에게 점령 및 통치되었다. 미군정 기간 동안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 : General Headquarters)는 대일본무덕회를 해체하였고, 동시에 검도를 포함한 무도 금지령[* 군국주의 억제 목적에서 학교 등에서의 무도 강습을 당분간 금지시켰다. 유도 등 일부 무술은 금방 교육제도에 복귀했고 가라테 등은 미군이 강습을 받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그리 강력한 금지령은 아니었으나 검도는 전투 훈련 느낌이 났는지 여러모로 미 군정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을 내렸다. 전후 미군 점령 기간 동안, 검도 애호가들은 어떻게든 검도를 부활시키고 싶어서 여러가지 수를 내어본다. 1950년에는 무도로서의 검도가 아닌 스포츠로서의 성격을 강조해서 전일본요경기연맹을 창립하는데, 요경기(撓競技)라는 것은 펜싱마스크 비슷하게 만든 방어구와 [[죽도]]를 사용하는 검도 비슷한 스포츠였다. 즉 검도가 아니라 펜싱 비슷한 스포츠라고 변명하기 위해서 검도의 경기적 측면만 강조한 변형이다. 또한 이 당시 '대일본제국검도형'의 명칭 또한 [[일본검도형]](日本剣道形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른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미군의 점령이 끝나고 검도 금지령도 무효화되었다. 1952년 검도연맹이 설립되면서 검도가 부활했고, 1954년에는 요경기연맹과 검도연맹이 합쳐져 전일본검도연맹(全日本剣道連盟, 줄여 전검련)이 된다. 전검련은 전쟁후 민주화의 흐름에 따라 과거 전쟁수행을 위한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던 잔재를 없애면서 검도를 민주적인 대중 스포츠로 만들고자 하였다. 다만 이후 무도적 성격도 강조되면서 검도는 스포츠인가 무도인가 하는 논쟁이 생겼다. 1970년에는 국제검도연맹(FIK: International Kendo Federation 또는 IKF)이 설립되었다. 각 국가별 검도 기구를 통괄하는 세계기구로서 3년마다 세계 검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인 단체인 GAISF(국제경기연맹연합)에 가맹해있으며, 검도, 거합, 장도를 세계에 보급하고 IOC 승인 국제 경기단체가 되어 검도의 올림픽 경기화를 꾀하고 있다. 다만 전검련은 검도의 정식종목화에는 반대하므로 이 부분의 노선이 서로 다르다. 일본 전검련과 대한검도회 모두 국제검도연맹 소속이다.[* 도쿄올림픽 2020 시범종목에서 후보로 추진되었으나 정작 채택이 된건 [[가라테]]이다.] 참고로 일본에서 '검도'라는 명칭을 쓰는 단체가 전검련 혼자는 아니다. 일본검도협회(日本剣道協会)는 스포츠화된 전검련과 다른의견을 가진 협회인데, 죽도 공격뿐만 아니라 몸싸움 격투와 다리걸기도 인정하는 과격한 실전 싸움을 염두에 둔 수련방법을 고집한다. 이는 나카야마 하쿠도를 계보로 신도무념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