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검도 (문단 편집) ==== 독자 행동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한국 기원설)] 한국 검도의 시초에 깊게 묻어있는 [[일제강점기|아픈 역사]] 및 한국의 반일 정서 때문에 한국검도계는 90년대 전까지는 일본을 아예 거론하지 않고 조용히 묻어가며 지냈었다. 그러다 90년대 초 해동검도와의 분쟁을 겪고, 또 대한검도회의 창립 세대가 교체되면서 일본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쫓겨나고 한국형 검도파가 대세를 잡으면서 상황이 변하였다. 바로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검도와 다른 독자성을 띄며 일본색을 제거하려 들었다. 대표적으로 대련 직전 쭈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일본식 예법인 준거를 금지하고, '멘', '코테', '도', '츠키'인 일본어 타돌 기합을 '머리', '손목', '허리', '찌름'으로 하며, 요판 도복을 금지하고,[* 요판을 빼도 하카마는 하카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요판이 있는 하카마는 무사용, 요판이 없는 하카마는 무녀용으로 구분한다.] 심판이 사용하는 깃발의 경우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홍백기 대신 청백기를 사용하며, 영어 표기시 일본어명인 'Kendo' 대신 한국어식의 'Kumdo'로 표기하며, 조선의 고유 검술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한국 검도에 대한 고유 역사를 '만들고', 이에 조선세법과 본국검법 같은 현대 복원 검술 커리큘럼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대한검도회는 검도의 기원은 한국에 있으며,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공식입장을 취하기까지 한다. >검도(劍道)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때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중국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병기고(兵技攷)에 나오는 '검도삼십팔편(劍道三十八篇)'이라는 기록이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략) 중국에서는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인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검도가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중략) 일본에서 검(劍)을 '쯔루기'라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말 '찌르기'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중략) 오늘날 검도경기의 원형은 격검(擊劍)이다. (중략) 우리가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라 화랑들이 격검을 수련하였다는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김유신조에 보이는 '검술을 연마하여 국선이 되었다.'라는 내용에서 격검을 잘하지 못하면 최고의 화랑인 '국선'이나 '풍월주'에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는 화랑들이 월정(月庭)과 같은 일정한 수련장소에 모여 체계적으로 격검을 수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깊은 산악이나 동굴에 들어가 극기훈련과 심령훈련까지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검기(劍器) 역시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삼국 모두가 동양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이러한 [[칼]]의 기능과 기기(技器)가 후대에 [[일본]]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검도의 모태가 된 것이니, 이는 누구도 부인 못할 역사적 사실이다. 비록 근대 수백 년간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무(武)를 경원하고 칼에 관해 소홀히 하면서 자괴(自愧)에 빠져들었으나, 중국의 <무비지(武備志)>에 소개된 유일한 검법인 <[[조선세법]](朝鮮勢法)>과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인 <[[본국검법]](本國劍法)>은 세계검도사에 큰 빛이 되고 있는 것이다.[[https://www.kumdo.org/sh_page/kumdo_history.php|원문]][[:파일:kumdoorigin.jpg|원문사진]]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68&aid=0000005921|이종림 전 회장 인터뷰]] 하지만 이러한 대한검도회의 공식입장을 뒷받침할 역사적 사료나 근거는 없다. 첫 번째로,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한중일의 고서나 문학작품, 사기 등을 통틀어도 검도(劍道)라는 표현을 쓴 예는 저 한 번 뿐이고, 역사적으로 근대 이전의 무술 명칭 끝에 도(道)를 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언급하지만, 이러한 용례를 최초로 사용하고 정립한 것은 일본에서 가노 지고로의 유도가 시초이고, 마찬가지로 검도라는 이름은 이 흐름에 따른 것이 시초이다. 두 번째로, 현재 일본에서 剣을 쯔루기(つるぎ)라고 읽는 것이 한국어 찌르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한국의 삼국시대 때 [[고대 일본어]]에서 '쯔(つ)'는 투(tu)로 발음되었고, 삼국시대 때 [[고대 한국어]]에서 찌르는 동작을 오늘날과 똑같이 찌르기라고 부르거나 발음했다는 보장이 없다. 세 번째로, 발굴되는 고대의 도검 유물들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모양이라는 것 외에 한국의 검술이 일본으로 전래되었다는 증거 자체가 없다. 현재 대한검도회가 사용하는 검이나 검술은 이미 언급하듯 20세기 전후로 일본을 통해 도입한 것이 시초다. 그전에 한반도 고유의 검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만약에 이러한 검법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들, 애초에 검술이나 무술자체가 생존 기술로 어느 지역에서건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이 수십 가지 이상이 있을 텐데, 개중에서 한반도 검술이 직접적으로 고대 일본검술들, 나아가 현대 검도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이 어느정도 일지 미지수다. 설사 영향을 미쳤다 한들 삼국시대가 끝나고도 13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는 보장도 없다. 당장 나중에 나온 조선[[환도(무기)|환도]], [[일본도]]는 삼국시대 [[환두대도|한국과 일본의 도검유물들]]과도 상당히 달라졌다. 네 번째로, 대한검도회에서 교육을 실시하는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은 거의 모든 동작이 검도와 다른 별개의 검술이다. 예전에는 [[반일감정]] 때문에 곤란했다지만, 똑같이 일본무술임에도 현재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유도]]를 보면, 딱히 일본무술이라는 사실을 숨겨야한다거나, 한국무술인 것처럼 주장해야 할 당위성이 부족하고, 검도 수련인들은 이에 대한 반발이 누적되어 있었다. 이러한 독자 행보로 국내외 검도수련인들이 적극적으로 이메일 문의를 하는 통에 2005년부터는 국제검도연맹과의 [[http://www.mookas.com/media_view.asp?news_no=3887|분쟁]]까지 있었다. 그러나 대한검도회는 [[전검련]]과 나란히 국제검도연맹에 최초로 가입한 꽤나 원로단체로 산하 단체 중 큰 비중을 차지해서인지 국검연에서는 이 행보를 묵인하였었다. 그러던 중 [[2021년]]연말 대한검도회 회장선거에서 독자행동을 고집하던 이종림 전임회장이 낙선하고, 김용경 회장이 당선되면서 [[2022년]]이후 대대적으로 규정변화가 있었다. 우선 대한검도회에서만 사용하던 청백기를 FIK 국제규정에 맞게 홍백기로 다시 바꾸었다. 또한 5단 이상 승단심사에서 조선세법단증을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조선세법은 별도의 독자적인 창작무술로서 수련할 수 있게 하였다. 본국검법은 초단 심사에만 적용하고 2단부터는 심사에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바뀐 규정은 바로 적용되어 2021년 3월 SBS배 전국 검도왕대회에서 홍백기가 등장하였다. 또한 대한검도회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4심제도 FIK 국제 규정에 의거한 기존의 3심제로 환원되어 진행되었다. 다만, 일본어의 로마자 표기인 'Kendo' 대신 한국어인 'Kumdo'의 사용, 요판도복 금지, 시작시 준거금지의 규정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다시 [[2023년]] 6월, 운영회의를 통해서 요판도복을 허용, 준거는 금지, 본국검법은 1-4단 승단심사 시에 일괄 적용하는 것으로 결정이 바뀌었다. 그래서 2024년부터 적용 예정인데, 사회인 검도계에서의 반응은 매우 나쁘다.[[https://cafe.naver.com/kumdov/72092|링크]] 더불어 로마자 표기 KUMDO도 여전히 사용 중이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대한검도회, version=8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