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르마니쿠스 (문단 편집) == 개요 ==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황족, 제위 계승권자, 정치가이자 장군. 정식 이름은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ermanicus Julius Caesar)[* 본명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CAIVS IVLIVS CAESAR) 또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가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이 이름들은 아내 아그리피나의 오빠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게르마니쿠스의 3남(실제로는 5남) [[칼리굴라]]의 이름이다.]이지만 보통은 게르마니쿠스 또는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라고 부른다. 본래 클라우디우스 가문 출신이며 태어날 당시 이름은 아버지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대 드루수스)]]와 똑같았다.[* 당시 로마인들은 대개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의 이름을 그대로 지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게르마니쿠스와 친동생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본명도 마찬가지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경우 할아버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큰아버지 티베리우스에서 그대로 따온 이름에 아버지 드루수스가 공적으로 얻은 게르마니쿠스만 더해진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 드루수스는 게르만족과의 싸움에서 큰 공적을 세워서 "게르마니쿠스"(게르만을 정복한 자)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가지게 되었으며, 원로원에게 이 칭호를 대대로 쓸 수 있는 명예를 얻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인 게르마니쿠스도 이 이름을 물려받았다. 게르마니쿠스의 아버지는 후에 [[아우구스투스]]에 이어 황제가 되는 티베리우스의 동복(同腹)동생[* 모친 리비아가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와 재혼할 당시 임신 중이었기에, 사람들은 그가 티베리우스와는 달리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핏줄일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대(大) 드루수스, 네로 드루수스)이다. 그는 낙마사로 요절하기 전 로마 장군 중 최초로 라인 강을 건너 엘베 강까지 진격했으며, 게르마니아를 거의 정복하기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다. 또한 아우구스투스가 [[아그리파]]가 급사한 이후 자신의 후계자(차기 황제)로 생각한 그의 양아들이다. 어머니는 [[아우구스투스]]의 조카딸이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소(小) 옥타비아의 딸인 소(小) 안토니아이며, 동복 동생은 리빌라와 훗날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가이우스|칼리굴라]]가 암살된 뒤 즉위하는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황제)|클라우디우스]]가 있다. 즉, 게르마니쿠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외종손[*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외외종손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단어는 없고, 국립국어원 역시 외종손이라는 표기를 옳다고 제시했다.], 리비아 드루실라의 친손자, 안토니우스의 외손자이다. 따라서 그는 태생적으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의 피를 모두 이어받은, 아우구스투스가 생각한 ‘적합한 후계자’였다. 이런 이유로 아우구스투스는 일찍이 양자로 삼았던 외손자들이 요절하자, 자신의 일가 모두의 혈육이고 외종손인 게르마니쿠스를 일찌감치 차차기 황제로 결정내린 뒤 후계구도를 짰다. 그래서 그가 게르마니쿠스의 큰아버지 [[티베리우스]]를 공식적인 양자로 삼고 율리우스 가문의 후계자로 입양할 당시, 티베리우스에게 친아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소(小) 드루수스(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결혼했지만 얼마 안 가 홀로 된 게르마니쿠스의 여동생 리빌라를 자신의 양손자이자 티베리우스의 외아들인 그와 결혼시켰다. 따라서 게르마니쿠스는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복잡한 입양관계를 통해 사촌동생이자 매제인 그와 형제관계가 되었다.]가 있음에도 누나의 외손자, 아내의 친손자인 게르마니쿠스를 티베리우스의 양자로 입적시켜 자신의 법적인 손자로 삼고 그를 율리우스 가문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아내는 아우구스투스의 외손녀로 게르마니쿠스에게는 6촌 누이인 [[대 아그리피나|대(大) 아그리피나]]. 어릴 때 외종조부 아우구스투스가 직접 맺어준 아내로 성년식 직후 결혼했다. 사이에서 9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이중 6명의 자녀는 유년기를 넘어서도 생존했다. 그리고 이중 셋째 아들[* 정확히는 다섯 아들 중 막내아들이다.] [[칼리굴라|가이우스]]는 제3대 황제가 되었고, 장녀 율리아 아그리피나([[소 아그리피나|소(小) 아그리피나]])는 외손자 [[네로|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클라우디우스의 양자이자 후계자인 제5대 황제 네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