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르마니쿠스 (문단 편집) == 여담 == * 선남 선녀였던 친부모와 젊은 시절 미녀로 유명한 할머니, 외할머니의 외모를 물려받아서 키가 컸으며 굉장한 미남이었다.[* 아우구스투스 일가에는 당시에도 미남, 미녀가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동시대 사람들 모두에게 굉장한 미남이라고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유명한 미남이었는데, 게르마니쿠스의 친할아버지와 친아버지 드루수스, 백부 티베리우스도 상당한 미남으로 유명했다. 이런 까닭에 게르마니쿠스의 여동생 리빌라 역시 당시 로마인들에게 상당한 미녀로 유명해서 로마의 한 시인은 그녀를 신화 속의 여신이라고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던 남동생 클라우디우스도 말을 더듬고 고개가 흔들리는데다 침을 흘리는 결점이 있었음에도 키가 크고 잘생겼다고 한다.] 또 그의 성격과 인품은 아버지 대 드루수스를 그대로 빼닮아서 어릴 때부터 인기가 상당했고 그를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말들은 게르마니쿠스가 죽은 뒤 게르마니쿠스 신화가 나오면서 나온 말이 아니었고, 게르마니쿠스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게르마니쿠스는 어린 시절부터 쾌활하고 낙천적이었으며, 상대를 잘 배려하는 성격인데다 신분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라도 차별을 두지 않고 진심으로 예의바르게 대하는 등 전체적으로 매력이 상당했다. 또한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장남으로서의 책임감도 상당해, 죽기 전까지도 홀어머니 안토니아의 자랑이었으며, 몸이 불편해 가족 대부분과 귀족 또래들에게 놀림당하고 구박받던 친동생 클라우디우스의 몇 안되는 보호자이자 친구이며 아버지같은 버팀목이었다고 한다.[* 게르마니쿠스 못지 않게 클라우디우스를 아끼고 챙기던 또 다른 황실 식구는 아우구스투스였다. 이런 까닭에 클라우디우스는 형과 외외종조부를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다.] *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게르마니쿠스는 의외로 새 공포증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닭]]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몰라도 게르마니쿠스는 상당히 닭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닭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무서워했고, 닭 울음소리 역시 무서워하고 안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게르마니쿠스는 젊은 시절 군 경력을 쌓는 중에 틈틈히 새들의 비행과 그 패턴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유는 신의 뜻을 이해해 전투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그는 이디스타비소 전투 당시, [[독수리]] 8마리가 숲 위를 날아가자 부하들에게 “이는 신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뜻이다”라고 말해 사기를 끌어 올렸다. *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7권에서 게르마니쿠스를 단순한 치기 어린 열정맨으로 치부하며 저평가했다. 하지만 게르마니쿠스는 시오노에게 저평가받을 정도로 열정에만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대 사가들로부터도 게르마니쿠스 신화로 알려진 사후 이미지 이상으로 한 개인의 역량이나 평가가 아주 좋았고, 인품이나 그 매력은 오늘날에도 "고결하다"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먼저 장군으로서 게르마니쿠스는 분명히 천재는 아니었어도, 로마군을 이끈 사령관들 사이에서는 분명 유능한 군사적인 역량이 있었다. 특히, 그는 아우구스투스와 대 드루수스의 후광 효과, 본인의 공식적인 지위가 아니더라도 과거 [[스키피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이 한 개인으로서 묘하게 부하들을 매료시키는 재주가 탁월해 자연스레 일개 병사들까지 따를 정도로 매력도 상당했다. 또 장군이나 정치가의 자질에서 꼭 필요한 카리스마와 추진력, 협상 능력이 탁월했고, 문제의 핵심을 제 힘으로 파악해 해결하는 재능도 유능했다. 혈통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매사 공평무사에 적재적소가 신조였던 티베리우스가 그저 게르마니쿠스에게서 군공 세울 기회를 앗아가서 엿먹이려고[* 타키투스, 그리고 당대의 일부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또한 티베리우스의 입장에선 게르마니아에서 군공을 쌓아 지나치게 인기가 높아가는 게르마니쿠스에 대해 어떻게든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었기에, 게르마니쿠스가 게르마니아에서 거둔 전공을 확실히 확립하기 전에 소환할 개연성도 충분했으며 이는 타키투스는 물론이고 이후 역사가들도 거론할 빌미를 주고 만다.] 그를 대파르티아 전선에 외교 임무를 맡도록 보내고, 또 군통수권까지 모두 부여한 게 결코 아니다. 즉, 그는 사후 고평가받긴 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로마군을 이끈 사령관으로는 두루 유능했고, 결단코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본인의 재능을 드높이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 제국 동방으로 파견되기 전인 게르마니아 전쟁 당시부터 심리전 활용과 외교전술 활용에도 상당한 재주가 있었다. 게르마니아 전쟁 중 이디스타비소 전투에서는 날아가는 독수리 등을 이용해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려 승리하기도 했고,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큰 상처를 준 [[아르미니우스]]를 상대로도 게르마니쿠스의 순간적인 기지와 심리전으로 로마군이 매복공격 등으로 고전하다가 위기를 넘기거나, 패배의 순간에 승리를 거둔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게르마니아 전쟁 기간동안 아르미니우스의 친동생 플라부스[* 이름인 플라부스에서 알 수 있듯이 금발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형과 마찬가지로 로마군에 입대해 로마 시민권을 따고 에퀴타스에 편입된 사람이지만, 그는 친형 아르미니우스의 편을 들지 않고 로마인으로 살았으며, 로마군 장교로 복무해 게르마니아 전쟁을 치렀다.]는 로마군 장교였고, 로마군 사령관 게르마니쿠스의 부장 중 한명이었다. 이때 게르마니쿠스는 전투 전에 의도적으로 로마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부장 플라부스를 아르미니우스 앞에 내보내 서로 설전을 벌이게 해 양 군대 앞에서 아르미니우스를 망신시키기도 했다. 플라부스는 전투 전 의도적으로 자신을 내보낸 게르마니쿠스의 뜻을 알아차리고 형과 말싸움을 벌였는데, 플라부스는 칼을 내밀고 자신의 손을 뻗은 뒤 아르미니우스의 아들과 아내가 그의 주장과 달리 행복하게 로마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며 이를 숨기고 싶어 했던 아르미니우스를 도발했고, 그의 평정심을 흐트려 놓았다. * 로마인들에게 단순히 사랑을 받은 사람 이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복무하면서 명성을 떨친 게르마니아 일대에서는 주둔 군단병, 퇴역병 및 그 가족들에게 그 인기가 사후에도 엄청났다. 따라서 황제나 원로원, 로마 정부 차원에서 먼저 요청하지 않았어도 이곳에서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은 무려 300여년이나 계속됐고 게르마니쿠스와 그의 아버지 대 드루수스를 위한 제사, 기념식은 연례행사처럼 계속 되었다. *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에도 등장한다. 작중 주변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당하는 동생 클라우디우스를 가족들중 유일하게 생각해주는 형이다. 그래서 자기 어머니조차 무시하는 자기 동생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할머니 리비아 드루실라와 큰아버지 티베리우스의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암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 넷플릭스 드라마 [[바바리안]] 시즌 2부터 등장한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 양부인 티베리우스를 따라 그의 참모로서 로마군을 지휘한다. 다만 아직 젊고 직접 게르마니아 전선을 관리하기 전이라서 그런지 실제 역사상의 게르마니쿠스와는 180도 다르게 묘사된다. 흥분을 잘하고 상황을 깊게 숙고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로마를 배신한 아르미니우스의 동생 플라부스를 지속적으로 의심하며 모욕을 준다. 결국 로마군을 이끌고 게르만 부족장 회의를 습격하여 많은 게르만 족장들과 측근들을 살해하는 병크를 저질러, 게르만족이 다시금 아르미니우스에게로 결집하게 만든다.[* 좀처럼 본색을 잘 드러내지 않는 티베리우스가 강하게 분노를 할 정도였다. 당시 티베리우스는 강력한 세력을 가진 친로마파 마르코마니족 족장 마로보두스를 포섭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때문에 많은 게르만 부족들이 그를 따라 친로마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는데 이걸 완전히 엎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아직 모든 군단들이 집결하지 않아 로마군의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후 게르만족이 보복을 위해 게르마니쿠스를 납치당했는데, 로마군 진지를 기습할 때 풀려난다. 뒤늦게 게르만족이 양동작전을 사용하고 있다고 알리지만 이미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로마군이 대패한다. 이후 티베리우스와 함께 퇴각하면서 투스넬다와 그녀의 아이를 납치하여 로마로 귀환한다. * 게르마니쿠스 본인은 생전에 뛰어난 장군이자 인격자로서 일반 민중에서부터 이웃나라([[파르티아]]) 황제까지 남녀노소 모두 인기 많았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남긴 후손들은 중에 비극을 겪지 않고 제대로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성품을 제대로 물려받질 못하고 오명속에 죽어갔거나([[소 아그리피나]])[* 게다가 소 아그리피나는 자기 배로 낳은 아들 네로한테 직접 제거 당하는 가장 끔찍한 운명을 맞이한데다, 하도 평이 좋질 않아 그녀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또는 음모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었거나([[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 그렇지 않고 황제로 즉위해도 [[원로원]]의 미움을 사서 죽고 나서도 평가가 오랫동안 박했다([[칼리굴라]]). 나머지 자녀들은 모두 유년기때 요절하였다. [[분류:로마 황족]][[분류:1세기 집정관]][[분류:로마 제국 집정관]][[분류:기원전 15년 출생]][[분류:19년 사망]][[분류:로마 출신 인물]][[분류:아우구스투스 영묘 안장자]][[분류:말라리아로 죽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