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르마니쿠스 (문단 편집) === 출생과 유년기 === BC 15년 5월 24일 로마에서 대 드루수스와 소 안토니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게르마니쿠스는 이들 부부의 첫째 아이였으며, 아버지 드루수스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소규모 전투를 승리를 이끈 뒤 갈리아 파견이 결정난 해에 태어났다. 게르마니쿠스가 태어난 이후에도 4명의 동생이 더 태어났는데, 그의 동생들은 모두 루그두눔(리옹)이 고향이다. 하지만 5남매 중 게르마니쿠스, 리빌라, 클라우디우스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본래 이름은 아버지와 같은 이름인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이는 1963년 발굴된, 아멜리아의 게르마니쿠스 청동상과 비문에서 확인된다. BC 9년 아버지 대 드루수스가 게르마니아에서의 승리와 공적으로 ‘게르마니쿠스’라는 존칭을 얻으면서 게르마니쿠스라는 칭호를 그의 일가 이름에 붙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은 아우구스투스와 그 가족들이 장식된 부조가 담긴 ‘평화의 제단(Ara Pacis Augustae)’ 남쪽 벽면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꼬마 게르마니쿠스는 아버지 대 드루수스와 어머니 소 안토니아 사이에서 아버지의 토가 자락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게르마니쿠스가 2살이 될 무렵, 갈리아 총독으로 파견된 아버지 드루수스를 따라 가족 전체가 루그두눔(리옹)의 총독 사저에서 살았다. 아버지 드루수스는 게르마니쿠스가 태어난 해, 법무관이던 동복형 티베리우스와 함께 알프스 일대 부족들과 전투를 치러 공적을 세운 이래, 갈리아 총독을 지내면서 아우구스투스의 게르마니아 전쟁의 총책임자 중 한명이 되었다. 게르마니아의 라인 강 전선으로 파견된 드루수스는 로마 장군 중 최초로 북해를 항해하고 오늘날의 네덜란드, 벨기에 땅을 넘어 라인 강까지 도달했다. 이후 그는 아우구스투스와 원로원에게 약식 개선식과 명예를 수여받고 다음해 집정관에 뽑혔다. 하지만 드루수스는 개선 군단을 이끌고 겨울(또는 여름)을 맞이한 게르마니아 땅에서 갑작스러운 불의의 낙마 사고로 불과 29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이때 맏아들 게르마나쿠스의 나이는 불과 6살이었고,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클라우디우스]]의 나이는 1살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