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르마니쿠스 (문단 편집) == 평가 == 로마인들로부터 '''전쟁 영웅 그 이상으로 평가받은 사람'''이다. 공화정, 제정 시대 전후 로마인 중 로마 민중들과 군인 모두에게 '''높은 도덕성과 육체적, 정신적인 측면 모두에서 "가장 이상적인 로마인"으로 찬사를 받은 [[아이돌]]이자 영웅'''이었다. 이는 그가 아우구스투스의 직계혈육인 이유 때문에 벌어진 우상화 결과는 결코 아니었고, 생전 인품과 재능, 그리고 게르마니아 전쟁, 오리엔트 일대에서 보여준 헌신, 열정, 고결, 상호존중 등이 당대 로마인들과 속주민, 해방노예와 노예, 심지어 로마 바깥의 레반트 일대와 아르메니아 등 동맹국, 적국 [[파르티아]]에게 모두 찬사받은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게르마니쿠스의 성격은 로마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덕목을 모두 충족하는데, 그 개인의 인격과 성격도 흠잡을 데 없었지만 그가 한 일들이 봉사와 헌신이라는 점에서 로마인들에게 매우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 봉사와 헌신은 공공과 국가(Res Publica)에 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개인의 이익보다 부모, 가족, 씨족, 신들을 위하는 일을 가리키는 신실함(Piety)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었는데 로마인들은 이것을 매우 중시했다. 게다가 그의 커리어는 로마인들이 공공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성공적 군 경력이었다. 게르마니쿠스는 한마디로 그 어떤 면에서든 로마인의 이상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사람이었고, 상식이 있는 로마인이라면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게르마니쿠스의 신화는 대중에게는 음험한 인물로 비친 [[티베리우스]]나 그와 다투다 그를 암살했다는 혐의를 받은 총독 피소 등 악역을 맡은 인물이 있었기에 더욱 극적으로 보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게르마니쿠스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좋아하지 않았던 제정시대 대표적인 공화정회귀주의자 [[타키투스]] 등 지식인들에게도 "동시대 어떤 로마인들보다 도덕적, 신체적으로 위대하고 뛰어났다"고 평가를 받았다. 특히, 타키투스는 게르마니쿠스가 그리스-로마 시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젊은 정복군주 이상으로 숭배된, [[알렉산드로스 3세]]보다 뛰어나다고 평했다. 이 평가는 타키투스로 대표되는 후세 로마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인데, 분명한 것은 게르마니쿠스가 인성 면에서는 친족들과 친구들을 죽였을 정도로 잔인성도 보여준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압도적으로 훌륭한 인물이었고,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도 전통적인 로마인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었기 때문에 타키투스같은 안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엘리트들에게 공적인 삶, 사적인 삶 모두 찬사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태도는 타키투스 이상으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자체를 혐오한 [[수에토니우스]] 역시 비슷했다. 이때 그는 칼리굴라에 대해서는 근거없는 온갖 소문과 악담을 [[뇌피셜]]까지 만들어 써 놓으면서도, 게르마니쿠스에 대해서는 그가 해줄 수 있는 찬사를 모두 적을 정도로 게르마니쿠스를 높게 평가했다. 이런 후세의 평가 외에도 이탈리아와 그가 생전 자랐거나 활약한 갈리아, 게르마니아 일대에서의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평가는 당대부터 절대적이었고, 그 파급력은 자발적이고 대단했다. 특히, 게르마니쿠스는 아버지 대 드루수스와 함께 게르마니아 전쟁의 무대가 된 오늘날의 라인 강 서쪽 일대에서의 평가는 찬사 그 자체였는데, 그 위상도 엄청났다. 그래서 대 드루수스와 게르마니쿠스 부자를 위해 게르마니아의 라인 강 일대에서는 최소 3세기 후반까지도 소속 병사들과 퇴역병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이들 부자를 기리는 제사를 치렀고, 두 사람의 인간됨과 업적을 기리는 책은 꾸준히 읽혔으며 이들 부자를 기리는 탑을 한 바퀴 도는 기념식이 매년 개최됐다.[* 따라서 게르마니쿠스의 막내아들 칼리굴라, 친동생 클라우디우스는 게르마니쿠스 후광 효과를 그가 생전 활약한 일대에서 계속 누렸고, 클라우디우스는 즉위 초 이 일대에서 일어난 반란이 병사들의 자발적인 반란 참가 거부로 인해 지나칠 정도로 싱겁게 끝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평했듯 게르마니쿠스는 뛰어난 정신과 육체를 갖고 있던 로마인들이 말하는 고결한 로마의 아이돌이었어도, 그 역시 결점이 전혀 없던 황태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타키투스 등 로마지식인들이 말했듯 고결하고 따뜻한 성품의 능력이 뛰어난 차기황제이자 장군, 외교관, 행정가이지만 게르마니쿠스 신화의 근간에는 큰아버지 [[티베리우스]] 시대에 대한 불만과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기 때문에 더 돋보였다. 따라서 수에토니우스를 제외한 다른 로마 지식인들은 게르마니쿠스를 뛰어난 장군이며, 사생활적으로는 뚜렷한 결점이 확실히 없던 도덕적인 로마인이라고 말했음에도, 과거 로마의 위대한 장군들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 [[폼페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이상의 장군 또는 압도적인 군공을 세운 전쟁영웅으로는 찬양하진 않았다. 이를 증명하듯 타키투스와 동시대 사람으로 학자이며 장군 프론티누스의 《전술에 대하여》에서, 게르마니쿠스는 여러 그리스-로마 장군 중 그 전술의 특별함이 기술되지 않은 로마 장군이었다. 따라서 인품과 정치가, 행정가, 외교가로서 재능이 훌륭하고 군사적 재능이 있음에도 그가 타키투스의 극찬처럼 전술까지 뛰어났던 장군이라고 고평가하면 안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