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겐트 (문단 편집) == 역사 == [[9세기]] 후반에 [[바이킹]]의 침공을 받아 파괴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생겨났던 플란데런 백국에 의해서 재건되었고 도시 인근의 양 목장의 양모를 바탕으로 직물 산업을 발전시켰다. [[14세기]]에 들어서는 직물 산업의 확장으로 양모가 부족해지자 잉글랜드에서 양모를 수입해야 해서, 친교를 맺었다. 겐트는 [[중세 영어]]로는 Gaunt(곤트)[* 그래서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헨리 4세]]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3세]]의 4남 존을 곤트의 존이라고 부른다.]로 불렸다. [[백년전쟁]]을 겪으며 플란데런은 프랑스 왕실인 [[발루아 왕조]]의 방계가 다스리는 [[부르고뉴국]]에 편입되었다. [[프랑스인]]들은 플란데런에 높은 세금을 매겼고, 당시 플란데런의 대표 도시였던 겐트는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우방인 잉글랜드는 [[카스티용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고, 겐트도 가베르 전투에서 [[선량공 필리프]]에게 패배하였다. 이후 저지대의 상업 중심지는 [[플란데런 백국]](겐트, 브뤼헤)에서 [[브뤼셀 백국]]이 [[림뷔르흐 공국]]과 [[룩셈부르크 공국]]을 합쳤던 [[브라반트 공국]](안트베르펜, 브뤼셀)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리안 1세(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가 부르고뉴의 상속녀인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플란데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리가 사망하자 합스부르크의 혼인 관계가 사라졌고, 겐트와 브뤼헤는 2차례에 걸쳐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겐트에서 태어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이탈리아 전쟁]]을 치르며 도시에 과중한 세금을 요구하자 다시 반합스부르크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번에도 가혹하게 진압되었다. 이후 겐트의 지역 유지들은 목에 올가미를 메고 카를 앞을 지나가야 했다. 겐트는 [[유럽]]의 규모가 큰 도시 중 하나였는데, [[네덜란드 독립전쟁]] 이후 바다로 가는 운하에 통행세가 부과되며 [[상업]]이 타격을 받았고 전장이 되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겐트 평화 조약으로 [[펠리페 2세]]에게 충성하는 대가로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는데 [[스페인]]의 변심으로 전쟁이 재개되었다. 대공세를 펼친 오렌지 공 빌럼의 군대는 겐트에 입성하였지만 스페인도 반격에 나섰고 [[파르마]] 공이 이끄는 플란데런 민병대는 이프르, 겐트를 점령하였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네덜란드 공화국|네덜란드 북부는 독립]]하였으나 남부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스페인과]]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가톨릭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스페인 왕실이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부르봉 왕조]]로 교체되자, 플란데런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중에는 [[프랑스군]]에 점령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756년]]에 [[동맹의 역전]]이 이루어지며 프랑스의 [[위협]]은 없어졌다. 북부에서 물길이 막혀 있던 겐트를 위해, [[신성 로마 제국]]의 [[요제프 2세]]는 [[네덜란드 공화국]]을 협박해서, 물길을 열게 하였다. 그래도 플란데런인들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고 결국 플란데런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브라반트 혁명으로 독자적인 국가를 선포하기도 한다.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곧 혁명 전쟁이 일어났고, 프랑스 혁명군이 저지대를 점령하며 오스트리아의 지배는 끝이 났다. 벨기에 일대는 프랑스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 프랑스 군은 물러났다. 미국과 영국의 [[영미 전쟁]]을 종결시킨 겐트 조약이 겐트에서 체결되기도 했다. [[빈 회의]]를 거쳐 벨기에 지역은 [[네덜란드 왕국]]에 통합되었다. 종교 차이 등으로 인해 프랑스의 [[7월 혁명]]과 함께 [[벨기에 혁명]]이 일어나 벨기에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2020년 7월 1일에 겐트 시에서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이 철거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71739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