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겨울전쟁 (문단 편집) == 평가 == 겨울전쟁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섣불리 전쟁을 일으켰다가 이득은커녕 손해만 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비슷한 예로는 [[베트남 전쟁]][* 이 전쟁도 '''[[초강대국]] [[미국]]'''이 벌인 전쟁이라는 점과 혹독한 기후에서 치른 전쟁이라는 점에서 같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고전한 이유가 울창한 [[정글]] 때문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있다. ~~예시로 든 전쟁 3개 중 무려 2개가 소련-러시아가 행한 전쟁이다.~~ 이 영상을 보면 겨울전쟁이 [[https://youtu.be/AzZsJ7JPa3g|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핀란드는 전국민이 일치단결하면서 소련과 맞서 싸웠다. 비록 패배하여 영토의 10%를 내주어야 했지만 주변에 있던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무수한 나라들처럼 [[소련]]의 공화국으로 강제합병되지는 않았으므로 적어도 독립국으로서의 국체는 보존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무의미한 결과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압도적인 숫적 열세 속에서 그토록 열심히 싸우고 전술적으로도 이득을 거두면서 나라가 완전히 흡수되는 것을 막아낸 것이다. 또한 소련 국내에서조차 핀란드 이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고작 저 정도의 땅[* 당시 소련이 차지한 땅의 면적이 캅카스의 작은 연방구성국 정도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의 작은 주 하나 정도였다.]을 차지하려고 전쟁했느냐?", "핀란드에게서 뺏은 땅은 전사한 소련 젊은이들을 묻고자 얻은 땅이다"라는 악평이 나왔을 정도. 소련에서도 [[피로스의 승리]]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이 당시 양국의 군비 차이와 무기의 질적 수준 격차를 고려하고 란체스터 법칙까지 적용하면 처참을 넘어선 대패이다.] 핀란드에도 겨울전쟁은 이후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소련이라는 강대국으로부터 독립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이런 전쟁은 약소국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리하여 냉전내내 소련과의 마찰을 극도로 피하며 서방과 거리를 두고 소련의 비위를 맞추는, 소위 말하는 [[핀란드화]] 정책을 취했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스탈린을 연구한 학자 스티븐 코트킨(Stephen Kotkin)은 《스탈린, 히틀러를 기다리다 1929-1941(Stalin Waiting For Hitler 1929-1941》에서 스탈린이 원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레닌그라드]]의 안보를 위한 종심 연장이었을 뿐, 핀란드 전국을 병탄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핀란드인들이 스탈린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완고하게 항전의지만 주장하여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을 자초했다고 본다. 당연하지만 핀란드인들은 이런 학설을 좋아하지 않는다.([[https://tammenlehva.fi/hitlers-and-stalins-cooperation-and-the-significance-of-the-winter-war-in-international-policy/|#]]) 애초에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소련은 핀란드 병탄을 결정했다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코트킨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핀란드 전역 병탄이 목적이 아니었을지라도, 소련이 요구한 지역은 핀란드에게도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__지극히__ 중요한 곳이었으며, 단지 자국의 국방에 필요하단 이유만으로 이런 곳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대국에 그냥 전쟁하자는 것과 다를바 없다. 나라 전체가 멸망할 요구만 부당하고, 일부만 낼름하는 요구는 정당하단 말인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