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견직물 (문단 편집) == 용도와 평가 == 고대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천을 찾을 수가 없었고, 현재도 세계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가격으로 세계 최고는 [[비쿠냐 울]]이 현재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한다.] 최고급 천으로 평가받는다. 가볍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흡습성도 좋고, 상당히 질긴 편이며, 방한 성능도 뛰어나다.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 거의 유일한 단점으로, 물세탁 시 강도가 매우 약해져 비단의 아름다움과 질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비단용 세제로 '''[[석유]]'''를 썼다. 현대에도 견직물은 기름을 사용하는 [[드라이클리닝]]이 기본이니 사실상 그때로부터 달라진 게 없다. 이 때문에 현대에도 변함없이 고급의류용 섬유로 통한다. 원단이라 그런지, 비단으로 만드는 옷은 고급스러운 드레스 따위가 많다. 과거에는 [[금]]에 필적하는 사치품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이 비단옷을 입을 수가 있었다.[* 《사기》에 기록된 바, 당시 비단 가격이 1[[필#s-6]]에 대략 6백 [[전(화폐)|전]], 고급은 8백 전까지 갔는데, 당시 물가로 비단 1필이 백미 6석(720 kg)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120 kg에 1백 전쯤 했다고 한다. 20 kg 쌀을 5만 원으로 잡으면 180~240만 원에 이르는 고가템. [[당나라]] 개원 13년(725)부터 천보 연간까지 장안과 낙양의 쌀값은 항상 1[[말#s-1.5]]에 15~20[[문#s-1.3]] 정도였고, 비단도 줄곧 1필에 200문 선을 유지했다고 하니 이 당시엔 쌀 1[[석(단위)|석]]당 비단 1필은 되었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신분이 높은 사람'임에 주목할 것. 실제로 많은 국가들에서 비단옷을 입을 수 있는 신분을 법으로 정했고, 규제가 상세한 경우에는 신분에 따른 비단의 품질도 규제 대상이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신분제가 약화됐다는 송나라 때에도 상인은 비단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야생 누에인 [[산누에나방]]이 짜낸 실로 만든 비단은 [[천잠사]]라고 해서 일반 비단보다 훨씬 귀한 취급을 받았다. 노란색을 띄고, 일반 비단보다 곱게 짜기가 더 힘들다. [[로마 제국]]으로 들어간 비단은 실제로 같은 무게의 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던 적이 있었다. 금과 비단의 상대가치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일정치는 않았지만,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재위기간에는 금값이 곧 비단값이었다. 1파운드의 비단이 1파운드의 금과 동가였고, 이 당시 1파운드의 금은 곧 12,000[[데나리우스|데나리]]에 해당했다. 비단은 단순히 사치품 용도로만 쓰이지 않았다. 상당히 질기고 튼튼하기 때문에 [[중국]]과 [[몽골]]에서는 [[갑옷]] 안에 입어서 갑옷의 방어력을 높이는 일종의 [[전투복]]으로 입었고, 그래서 장수들은 갑옷 아래에 비단옷을 받쳐 입었다. [[관우]]의 상징인 풀빛 비단옷이 대표적이다. 반면 일반 병사들은 풀솜이라 해서 비단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 같은 것을 이용한 옷을 입었다. 몽골의 비단 전투복은 질긴 재질 특성상 화살이 박히더라도 옷이 찢어지지 않아서 그냥 잡아당기면 화살째로 뺄 수 있었다. 18세기 서구에 와서도 [[권총]]을 이용한 결투를 할 때는 아예 상의를 다 벗어 맨몸으로 싸우거나 실크 셔츠를 입고 싸웠는데, 당시의 권총 성능상 총탄을 화살촉처럼 셔츠째 잡아당겨 뺄 수 있어 큰 부상을 막아 줬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방탄효과도 나쁘지 않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제대로 된 소총탄 등은 유효사거리에서 막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도태되었다. 수술용 봉합사로도 사용했다. 쉽게 말해서 수술 부위를 꿰메는 용도. 비단은 섬유가 가늘면서도 질기고 신체의 부작용도 크지 않아서 봉합사에 적합했다. 역시 현대에는 더 튼튼하면서도 유연하고 몸에 흡수까지 되는 특수 섬유로 만든 봉합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 빈도가 적다. [[낙하산]]으로도 쓰였는데, [[미 육군]]에선 일부 참전용사들은 사용 후 회수한 낙하산을 집에 보내 결혼할 여성에게 [[웨딩 드레스]]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장교 한 명이 본토의 아내에게 드레스 원단으로 선물하기 위해 보조낙하산을 낙하 후에도 영국으로 철수하기 전까지 계속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나일론]]이 개발되고 나서 누에를 군수용품으로 팔던 곳은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낙하산은 기능적인 면에서 비단을 쓴 것인데, 더 싸면서 기능도 더 좋은 나일론이 나오면서 비단을 낙하산에 쓰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미국에 비단을 가장 많이 수출하던 나라가 일본이었다.[* 사실 20세기 초까지는 중국이 가장 많이 수출했는데 중국이 혼란스러워지니 수출량이 감소해서 그 자리를 일본이 매꾼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 만주 사변으로 미국과의 사이가 나빠지자 미국이 일본제 비단의 수입을 규제했다. 이른바 1930년대의 [[https://www.enemyinmirror.com/japanese-silk-boycott/|Silk Boycott]]. 당시의 일본의 농촌 경제는 이 양잠업으로 유지되었는데, 안그래도 세계대공황으로 경제가 어려운 판에 실크 보이콧으로 농촌 경제가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고, 이는 일본이 군국주의화가 되는 한 원인이 된다. 현대에 이르러 필라멘트 섬유라는 비단의 특성을 활용하여 전자기기와 결합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가 [[스피커]]. [[트위터(음향기기)|트위터]]의 진동판 재질에 실크가 활용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