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결투 (문단 편집) === 독일 === [[독일]]에서는 19세기 대학에서 멘주어(Mensur)라는 결투를 하는 클럽이 크게 유행했으며, 독일의 유명인사들도 이 결투 클럽을 많이 거쳐갔다. 가능한 치명상을 입지 않기 위해 눈과 몸통에는 보호장구를 착용했으나, 얼굴에는 아무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켰기 때문에 얼굴에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상처가 나도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임석한 의사(학생들 간의 결투면 의대생)들이 즉석에서 [[알콜]]로 소독하고 대충 꿰메는 정도의 치료만 했으므로 흉터가 크게 남았는데, 이게 다른 학생들이나 [[아가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히려 상처 없는 인간이 [[고자]] 취급을 당하고 얼굴의 상처가 멋의 상징이 되는 바람에 결투를 할 용기는 없지만 여자는 꼬시고 싶은 학생들이 일부러 얼굴에 칼로 상처를 냈다가 발각되어 망신을 산 사례도 있다. 결투로 인한 전형적인 상처는 [[오토 스코르체니]] 문서의 사진으로. 원래는 펜싱검이 결투의 무기였으나 보호장구를 장착하고도 사망사고가 자주 터진데다 1839년에 [[예나]]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펜싱검의 사용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후 무기가 [[세이버]]로 바뀌었으며, 결투는 [[대학생]]의 상징이자 특권으로서 계속 존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반유대주의]]가 범람하였을 때 우파 학생조직이 내세운 반유대주의 실천조치 중 하나가 "유대인 학생으로부터 '''결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일 정도였다. 현재도 독일 대학에 결투 클럽은 남아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많이 온건해졌다고 한다. [[막스 베버]]도 대학시절 결투클럽에서 활동했고 그 덕택에 소시적의 비사교적인 성격이 많이 고쳐졌다고 회상한다.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본문 중에 나오는 결투 클럽은 여기서 창안한 듯. 현대적인 [[명예훼손]] 및 [[모욕죄]]의 시초가 독일이라는 설이 있는데, 상대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결투가 잦아져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모욕을 법으로 다스리기 시작했고, 이는 독일의 법제를 받아들인 일본을 통해 한국과 대만에도 전해지게 된다[* 박경신, 진실유포죄. P.51]. '''일본에는 실제로 결투금지법이 있다는 점'''[* 그래서 일제강점기 조선 및 해방 직후 형법 의용 기간 동안에도 결투금지법이 있었으며, 이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에서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